처음부터 아빠를 만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아빠를 보고 싶다고 인정하면 내가 지는 게임 같았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자존심이 상하고, 내 존재가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난 그 사람이 보고 싶어….’
엄마에게 그 말을 꺼내는 데에도 35년이 걸렸었다.
그걸 인정해 버리면 내 존재가 먼지처럼 사그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입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 내 욕구는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시로, 편지로, 영화로, 상담으로, 수없이 아빠에 대한 감정을 토해왔지만 도돌이표 같았다.
“저 그 인형치료로,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요? … 그냥 어릴 때부터 아빠를 불러보고 싶었는데, 인형치료라면, 어쩌면 가능할 것 같아서요.”
뚜벅이샘을 만나고 인형상담치료란 걸 알게 된 후, 그걸 통해 아빠를 대면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요청을 했다.
어쩌면 그 말을 하기까지 나에겐 40년의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뚜벅이샘은 흔쾌히 내게 인형들을 보여주시며, 그중에 아빠와 비슷한 인형을 선택하라고 하셨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막상 인형을 보는 순간, 턱이 지진 난 것처럼 떨리고 눈물이 미친 듯이 터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심장으로부터 어떤 것이 쑥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이산가족을 만난다면 딱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엄마와 헤어졌던 스물 일곱 살의 젊은 청년과 이제는 일흔이 된 노인 인형 두 개를 골랐다.
‘아빠…’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너무 안 터졌다.
내 입이 그 단어를 내뱉는 걸 극도로 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목이 멘다는 뜻이 바로 이것 같았다.
그 흔한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번 입이 터지니 말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라고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게 이룰 수 없는 꿈이라서 괴로웠다고 말했다.
한번 불러볼 수 있어서 고맙다고도 했다.
궁금했다고도 했다. 나는 안 보고 싶었는지, 후회는 안 했는지, 궁금한 적은 없었는지, 잘 살았는지 물었다.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싶었고, 어릴 적에는 아빠가 내 주변을 배회할 것 같았다는 말도 했다.
얼굴도 보고 싶었고, 닮은 곳이 없는지도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잘 살았다고 말했다.
거짓말이라고 했다. 잘 살지 못했고, 괴로웠고, 원망했고, 당신에게 복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신의 영향권 아래에서 살았는데, 이제 좀 벗어나고 독립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이런 마음을 말할 수는 없었는데 내 세상은 온통 아빠여서 괴로웠다고도 했다.
단 한 번이라도 괜찮았냐고 물어봐주길 바랐다고 했다.
난 안 괜찮았어. 아직도 힘들어. 죽고 싶을 만큼 나 힘들어. 너무 성공해서 복수하고 싶을 만큼 당신이 미웠어.
내가 보고 싶은데 당신이 날 또 외면할까 봐 두려웠어. 날 또 거부할까 봐.
그래서 내가 잘돼서 찾아오게 만들고 싶었어.
뚜벅이샘은 언제든지 아빠가 보고 싶으면 소환하라고 하셨다.
하고 싶은 말도 언제든지 다 하라고 했다.
나는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았다.
소환이 끝난 후 뚜벅이 샘은 이런 의식이 ‘애도’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애도를 못했구나.
너무 슬펐었는데,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구나.
아빠와의 대면을 마음속으로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인형작업은 생각보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경험을 남편과 이야기를 했다.
“그냥 인형치료였을 뿐인데, 막 이산가족 만나는 것처럼 온몸이 떨리더라?”
“사람의 뇌는 단순해서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을 못해..”
그래.. 적어도 내 뇌는, 내 몸은 정말로 아빠를 만난 거구나.
그 마음과 내가 드디어 대면을 한 거구나.
내게 아빠는 늘 27살에서 30대 초반이었는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나의 아빠는 70살이 되었다. 벌써.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을 때까지 우리 또 보자.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