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내게 잘못한 단 한가지

문제는 결손가족이 아니야

by 온니

미혼모인 나의 엄마는 강인하고 해맑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를 혼자서 낳을 생각도 했다.

언젠가 엄마에게 혼자서 나를 키우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아니라고, 밖에서 일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와서 널 보면 너무 행복했다고, 널 가졌을 때 너무 좋았다고. 태몽이 좋아서 널 낳았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언제부턴가 터져버린 나의 울분 때문에 엄마도 힘들고 많이 쌓였겠다고 물어보면 엄마는 아니 난 너에게 단 한 번도 쌓인 적 없다고, 왜 너에게 쌓였겠냐고 말해주는 착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내게 잘못한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거짓말로 아빠의 존재를 얼버부리고 둘러댄 것.


어릴 적에 엄마에게 아빠에 대해서 물어보면 엄마는 아빠가 외국에서 일을 한다고 거짓말했다. 어떤 날은 미국에 가 있다고 했고, 또 어떤 날은 멕시코에 가 있다고 하고, 또 어떤 날은 아르헨티나에 갔다고 했다. 1년 뒤에 온다고 했다가, 또 세 달 뒤에 온다고 했다가 계속해서 말이 바뀌었다. 어린 나는 오지 않을 아빠를 7살까지 애타게 기다렸다.


7살 때 할머니에게 도대체 아빠는 언제 오냐고 물었던 날, 역시 참고 참았던 할머니가 내게 매몰차게 말한 적이 있다.

‘너도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냐! 이제 다 컸으니 더 이상 아빠에 대해 묻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질타했다.

(알긴 뭘 알아, 고작 7살 유치원생인데…)

하지만 7살이었던 아이는 너무 창피하고 화끈거렸다. 눈치도 없이 그런 걸 물어봐서 가족들을 속상하게 하고, 속없는 아이가 되었다고 느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온다는 동요를 들으며 애타게 기다렸던 아빠는 올 수 없구나. 나는 애타게 기다렸는데 나는 버려졌구나. 화가 났다. 그 이후로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하지만 보고 싶다는 감정을 억압했을 뿐이지, 괴로움까지 어찌 없앨 수 있을까.

나는 괴로워할 때마다 주변에서 할머니가 했던 그 말을 또 들어야 했다.

“이제 괜찮아질 때도 되지 않았어?”

나는 결혼도 했고 꿈도 이뤘고, 엄마니까 괜찮아야 했다.

하지만 상처가 되었던 그 말을 가장 많이 한 건 나였다.

‘이제 힘들어할 만큼 힘들어하지 않았냐고.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너무너무 지겹다고. 넌 만족을 몰라. 도대체 언제까지 어린아이처럼 괴로워할 거냐고’


어느 날, 나의 4번째 상담 선생님께서 내게 말했다.

7살 때 할머니가 했던 말이 오죽 한이 되었으면 스스로에게도 할머니처럼 못되게 구냐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아직도 보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20대에 잠깐 찾아볼 생각도 했지만 어차피 만날 수도 있는데 보고 싶어서 뭐 하냐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건 아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나의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된 비관적인 습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은 집요하게 물었다.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외부적인 조건 말고 당신의 마음이 궁금하다고 물었다.


머뭇거리던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너무 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다. 최근에 사진을 봤는데 너무 잘 생겼더라. 나를 너무 닮았다며 또 울었다.


어릴 적부터 내가 가끔 무력해지는 이유는 나의 꿈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꿈은 아빠를 단 한 번이라도 보는 것. 아빠라고 불러 보는 것이었으니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
그런데 아빠를 만나는 것과 별개로, 내게 금기와도 같았던 아빠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으니 오히려 불구덩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소중하게 여겼어야 했던 마음은 바로 내가 애써 외면하고 인정하기 싫었던 아빠에 대한 이 마음이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가끔 맘카페에 별거와 이혼을 앞둔 엄마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을 해줘야 하냐고 묻는 글을 남길 때가 있다.

나는 이런 댓글을 쓴 적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이혼하는 상황보다 자기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상황을 더 괴로워해요. 헤어진 부모가 보고 싶으면서도 양육자에게 그걸 말하면 엄마가 힘들어하거나 대답을 어려워하는 비언어적인 제스처로 오히려 상처받더라고요.
아, 내가 괜히 이야기 꺼냈구나, 하면 안 되는 이야기구나..
하지만 아이가 본인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편하게 오픈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양육자는 00는 속상하구나, 아빠가 보고 싶구나.
그건 너의 당연한 욕구야.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야.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우리는 이러이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고 이 상황이 너에게 더 좋은 영향이 가도록 엄마가 2배 더 노력할게~
그런데 혹시라도 중간중간 속상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면 꼭 이야기해 줘.
마음이 무거워지면 결국 이게 큰 상처가 된대.
그때그때 터놓고 풀어야 돼~
이렇게 이야기 나누고,
‘상황은 완벽하지 않지만 두 부모 다 널 변함없이 사랑하고 네 편이다’란 이야기, ‘절대 네 잘못이 아니란’ 이야기도 많이 해주면
별거든 이혼이든 아이는 이겨낼 수 있어요.
세상에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이 존재한다는 거 아이들도 다 이해해요.

부모 중 한 명과 헤어진 것도 아이입장에서는 속상한데,
같이 그 마음을 소통하고 공감해 줄 남은 가족(엄마 혹은 아빠)까지 잃어버리는 상황이 저는 가장 가슴 아프더라고요.
부모 중 한 명과의 헤어짐은 어쩔 수 없었다면 남은 가족까지 잃지 않은 건 우리가 꼭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바라는 건 두명의 부모가 아니예요.
온전히 지지해줄 단 한명만 있어도 충분해요.

하지만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는 27살, 너무 어린 나이였고, 그 당시에는 이런 커뮤니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꼭 들었어야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나의 시작점을 모른 채,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불구덩이를 안은 채, 고문과도 같았던 오랜 시간을 견뎠다.


아이러니한 건, 난 결핍으로 인해, 더욱 깊고 단단해졌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늘 어려운 일에 닥칠 때면 빈약한 존재가 고개를 들었다. 언약한 존재를 메우기 위해 그토록 일에 집착했다.

하지만 인생의 어려움은 피할 수 없더라.

내 속이 곪아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느꼈던 어느 날,

나는 크게 넘어졌고, 다시는 못 일어날 것만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나의 5번째 상담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미혼모가 힘들까? 미혼모의 딸이 힘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