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rish Dec 27. 2018

[목글] 기다리는 인생

내가 너였다면,

“저 분명히 7시에 예약했는데요.” 

“네, 근데 다른 예약이 계속 미뤄져서 조금 지연됐네요. 죄송합니다.”

“안타깝네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최소 30분이요. 길면 1시간까지?”     


속으로 온갖 욕을 했다. 예약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새기며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머리를 지배해버렸다. 기다리는 건 정말 질색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궁시렁거리며 도착한 집엔, 강아지만이 날 반긴다.

“저리 가. 오늘 산책 못가. 기분 안 좋아”     


한참이 지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도 기다렸을 텐데.’ 

너의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7년 전, 우연히 들른 식당 옆에서 화장실 다녀오는 가족을 기다리며 만난 너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후에 알고 보니 너의 출생은 참으로 눈물이 났다. 그런 네가 우리 가족이 되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곳에서 안락사를 당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그리고 난 정말 가족처럼 널 대했다. 너의 인생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새끼를 낳는 기계로 태어난 어미 밑에서 한 번의 젖 물림도 경험해보지 못한 네가. 

눈도 채 뜨기 전에 강아지 공장에서 팔려와 병원 진열대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네가.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네가.

단 한 번의 생명과의 관계를 맺고 살았으랴.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데. 

네가 경험한 것은 아직 극히 일부인데. 

이 좁은 아파트에서 기다림 속에 평생을 살아가는 네 인생이 참 가엾어졌다.     


‘개팔자가 상팔자네’

기다리지 못하는 인간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다음 생엔 꼭 개로 태어나겠다는 사람에게 한 마디 건넨다. 

“기다리는 건 잘하시고요?”     


기다림에 지친 너는 벌써 8살이 되었다. 노년이 되어가는 너를 보며 자괴감이 든다. 내가 괜찮은 주인이 아님을 느끼며 생각했다. 내가 너였다면, 그 인생은 참 고달프겠구나 하며.



반려견, 반려 동물, 그리고 가족 - 18. 12. 27


작가의 이전글 죽은 길냥이를 만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