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날조된 사진

-또?! 혼자 가는 제주도

by 일필
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여행 2일 차다.



내 방도 이렇게 깔끔했으면.


여행을 떠나면 꼭 체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맛집 검색.




우리네 여행은 먹으러 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숙소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맛집이다.


간혹 가다가 맛집을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분들도 계시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에 가면 꼭 줄 서서 먹는 맛집에 꼭 가야 한다는 열정은 없지만, 이왕이면 한 끼 정도는 유명한 곳,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골라 가려고 하는 편이다.




내 계획은 숙소에서 가까운 '수우동' 에 가서 아침을 먹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임시 휴무 공지가 떠서 새로운 맛집을 물색해야 했다.


7시부터 접수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하던데, 조금은 아쉽지만 괜찮다.

다음이 있으니까.



제주도에서 '다음'이란, 함부로 기약해서는 안 되는 날을 의미한다.




하지만 2015년의 나는 알았겠는가. 진짜 협재에 다시 오게 될 줄.


우리의 인생은 가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그러니 다음 여행에선 진짜 수우동에 오게 될 수도...









준비해온 지도를 꺼내본다.



곧 죽어도 아날로그




해녀의 집은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라면 정도니, 아무리 해산물이 듬뿍 들어갔어도 아침부터 라면을 먹기는 부담스러웠다. 짜장면도 마찬가지.



제주도에 왔으니 이왕이면 제주도에 와야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보말? 제주도에선 흔한 식재료이지만 육지에선 먹어본 적이 없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새 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원래 입이 짧아 내가 잘 알고 있는 식재료로 만드는 음식이 아니면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래. 제주도에 왔으면 보말 정도는 먹어줘야지.



오늘의 첫끼니는 매생이 보말전이 유명한 '담다'로 선택했다. (인스타 : @hyeobje_damda)




담다는 특이하게 오전 8시에 열어 16시에 닫는 곳이다.


제주 여행을 오면 대부분 내가 가려는 식당이 10시나 11시에 열어 18시나 19시면 닫는 구조라 어쩔 수 없이 밥을 원하는 시간대에 먹기가 힘든데, 담다는 다행히 오전 시간에 문을 열어서 일정을 조금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오전 8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고 싶었던 것.

협재 뷰 눈으로 감상하기.



날이 좋았다.



내가 원한 제주도 날씨 바로 이거지. 좋았어.



오늘은 준비해왔던 반바지를 꺼내도 좋을 것 같다.



바다 여행의 묘미는 역시 발 담그기다.




추워보인다면 그것은 기분탓입니다.


2019년에도 챙겨간 반바지 덕분에 12월이지만 파도에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춥지 않다.










정신력만 있다면.







오전 8시 50분



아침을 먹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지만 믕이와의 모닝 영상통화는 놓칠 수 없다.



잠이 온다개. 잠이 와. 뀨우우웅.


엄마와 믕이는 아직 이불 속이었다.



연락 좀 그만하라는 엄마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아쉬운 영상통화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제대로 만나게 되는 협재 바다.





협재의 날씨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하질 않아서,





모든 날이 추웠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2015년 12월의 겨울바다는 혹한의 추위였다.

2019년 12월의 겨울바다는 춥지 않았다.

2021년 10월의 가을바다는 2019년 12월 겨울보다 추웠다.






제주도 날씨는 굳이 검색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예측할 수 없으니까.




지금 부는 바람은 예보관의 눈물 바람




분명 인스타에는 얇은 원피스와 반바지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지은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현실은 혹한기였다.



전부 날조된 사진.

조작과 거짓.

그것으로 얼룩져있는 협재해변의 인증샷들.


나처럼 인스타만 보고 속는 분들이 없기를 바란다.




창문으로만 봤을 때는 오늘 날씨가 춥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머 오늘 날씨 너무 화창하고 좋은걸~? 바람도 안 불고~




그래서 입고 나온 룩.

얼어 죽을 룩



옛날 할머니 댁 뒷간 갈 때 느꼈던 그 추위였다.

위에 잠바만 대충 걸치고 슬리퍼 신고 마당에 나온 그런 느낌.

잠바라도 입으면 다행이지 나는 잠바 없이 니트만 입었다.





그럴 리가 없어. 숙소에선 분명 따뜻해 보였단 말이야.

숙소 나오기 전에 확인한 바람 어플을 다시 한번 켜보았다.


빨간색 아니면 바람 적게 부는 거 아닌가? 뀨



그랬다. 나는 어플을 깔 줄만 알았지 바람을 보는 법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리둥절. 어플엔 바람이 고작 요고밖에 안 부는데.

지금 협재 날씨는 왜 구로지? 흐음. ( ´_ゝ`)

정말 많이 이해가 안가네?






나는 혹한기 추위를 피해 서둘러 '담다'로 향했다.





9시 30분

담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제주도는 자체 QR 인증 시스템이 있어서 어플을 다운받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톡 바코드로 인증할 수도 있지만 간혹 가다가 이 제주 안심 코드만 가능한 곳도 있기 때문에 수기 작성이 싫었던 나는 이 어플을 다운받아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나중에 내 인증 이력을 한 눈에 볼 수도 있다.




편한 자리에 앉아

먹으려고 했던 매생이 보말전을 주문...하려다 갑자기 김치만두가 먹고 싶어서 함께 주문했다.



수제 김치만두와 매생이 보말전



입이 짧은 자답게 평소에 전을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 전이 맛있던지, 고기나 냉동식품을 구워 먹을 때도 바싹 익혀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매생이 보말전의 적당히 탄 맛이 나의 입맛에 딱이었다.


애매하게 흐물거리는 식감이었다면 오히려 싫었을 것 같은데, 따뜻하게 탄 맛이 구수하게 느껴져 밀가루로 하루를 시작해도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아! 이 김치만두.

아빠가 워낙 김치만두를 좋아해 우리 집 냉장고 한 켠에 만두는 늘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만두를 돈 주고 사 먹기는 조금 아깝다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유달리 야들야들해 보이는 메뉴판 속 수제 만두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역시 만두피.

이곳의 만두피는 꽤 얇은 편이다. 집에서 만두를 빚어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피가 너무 얇으면 그만큼 잘 여며지지 않고 찌는 과정에서 터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피를 두껍게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의 만두피는 빚을 때부터 이미 꽤 얇은 피를 사용한 것처럼 느껴지는 두께였다. 만두피부터 만두소까지 모두 직접 빚어 만든다고 하니, 6,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조금씩 자주 먹 파인 나는, 절반씩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 날밤 숙소에서 맛있는 만찬을 벌였다.






*조금씩 자주 먹 파 : 작은 위장 크기로 인해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고 조금씩 자주 먹는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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