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직서가 Oct 22. 2024

빵과 나침반

Do you know 'TEXT HIP'?



시간은 길을 걷듯이 가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 길이 나타난다.

                                                             『모모』, 미하엘 엔데





우리는 인생에서 종종 방향을 잃는다. 

정해진 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현대 사회에서 물리적인 나침반 대신,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들은 다양하다. 길을 잃었을 때, 스마트폰을 꺼내 GPS로 현재 위치를 확인해 목적지를 찾는다. 모든 것이 손 안에서 해결되는 디지털 나침반은 물리적인 이동뿐 아니라, 삶의 여러 갈림길에서도 결정을 돕는다. 리뷰를 찾고,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확인하며 자신의 길을 정한다. 여행지, 진로, 취미 심지어 인생철학까지도 우리는 디지털 나침반을 통해 가늠한다. 



누군가 올린 사진 장, 남긴 짧은 문구가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끊임없이 나침반을 따라가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 행선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오히려 더 많은 선택지와 정보 속에서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스마트폰이 제시하는 길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듯, SNS가 보여주는 남들의 삶이 반드시 정답이 아니다. 때로는 이러한 현대의 나침반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침반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며 분명한 길을 보여줄 것 같아도 늘 친절한 것만은 아니다. 가끔 길을 잃게 만들고, 한참 같은 자리를 맴돌게 하게도 하니 말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 > 


이때 필요한 것이 정말 나침반일까? 어쩌면 단순하고, 본능적인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나침반보다 한 조각의 빵을 떠올린다. 배고 고플 때 우리는 나침반이 아니라 빵을 찾는다. 단순한 밀가루 반죽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안정감이 담겨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한 입 베어 물면 간장감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길을 잃었을 때, 빵은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게 해 준다. 방향이 없는 혼돈 속에서도 빵 한 조각은 우리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작은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차도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다. 양옆에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길은 점점 좁아져 방향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침반이나 GPS에 의존하는 대신 그냥 이 순간을 즐겨보자 싶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대신 가방 속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꺼냈다. 



바람은 기분 좋게 불어오고, 주위는 고요했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빵 속에 담긴 신선한 채소와 고기의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그 여유가 나에게 더 중요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샌드위치를 먹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낯설고 헷갈리는 상황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먹고 나니 다시 걸을 힘이 생겼고, 마음도 편안했다.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이 다시 보이는 게 아닌가. 방향을 정확히 알 필요가 없었다. 순간의 여유와 마음의 안정이 오히려 다시 길로 인도해 준 셈이었다. 





진정한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있을 때 가장 잘 흐른다.

                                                           『모모』, 미하엘 엔데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나침반을 손에 쥐고 명확한 답을 찾으려 애쓴다. 진로에 대한 고민, 관계에서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등 모든 것이 우리를 길을 잃게 만든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나침반 대신 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항상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막막할 때 종종 빵처럼 단순한 것에서 위안을 찾는다. 결국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은 때로는 길을 잃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길이 뚜렷하지 않을 때, 빤한 조각을 생각해 보는 여유. 빵을 먹으며 잠시 멈춰 서면, 길을 잃은 상태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작은 위로가 우리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미 자신만의 나침반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이전 07화 눈사람과 전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