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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네랑 May 11. 2024

Way Maker 14-2. 가톨릭 스쿨

너의 세상은 어떠니?

2022년 1월



처음 2개월은 Year R(유치원)에서의 업무였다. 

역시나 이곳에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셨고 배울 점이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래 있진 못하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1-2-1을 더 이상하지 않겠다는 나의 으름장이 무색하게 나에게 Autisim 스펙트럼이 deep 한 아이, G 군을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Genaral TA잡이긴 한데 10시부터 12시까지만 이 아이를 케어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데, 뭔가 '안돼!' 하기도 애매한 시간 할당이어서 뭔가 얼렁뚱땅 생각할 겨를도 없어 'OK'가 되어 버렸다. 


일단은 '알았다' 하였지만, 며칠 해보고 아니다 싶음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하기로 했다. 에이전시에서 일하면 좋은 Flexibility이니 장점을 한껏 누리면 되는 것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General TA일을 하길 원한다'라고 reminding 은 잊지 않았다. 


Year R에는 두 분의 main teacher가 있었다. 영국은 종종 담임선생님이 파트타임으로 일별 혹은 시간별로 나눠서 담당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그 나잇대 선생님들이 육아를 병행하기 때문에 가정을 더 중시하는 영국 문화에서 이런 워라밸 발란스를 위한 허용범위가 한국보다는 넓은 편이다. 


담임선생님 중 한 분은 L 선생님으로 카리스마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지만 규칙이나 인성 및 사회성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strick 하지만 resonable 하게 알려주는 스타일이었어서 아이들은 선생님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무서워하면서 말을 잘 들었다. (역시 선생님은 너무 쉬워 보이면 안 되나 보다)  덕분에 보조교사로서 아이들 서포트할 때 behave management까지 신경 쓰진 않아도 되어서 멘털적으로 편했다. 


다른 한분은 C 선생님으로 부드러웠고 스윗한 면이 있었으며 전형적인 유치원선생님 같은 느낌이었다. 동료로서 같이 일하기 편했지만 조금 더 허용적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쉽게 산만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보조교사로서는 조금 더 신경 쓰며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두 분의 성향은 굉장히 달랐지만 두 분은 소통을 많이 하며 일관적인 규칙들로 아이들에게 혼돈을 주지 않으려 많은 노력들을 하였다. 


10시. 너의 세상은 어떠니?


K군이 오는 시간, 10시가 되면 묘하게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K 군은 사실상 일반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수준의 자폐가 아니었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고, 자기만의 세상에 사는 듯한 느낌의 아이였다. 큰소리에 민감해서 놀라며 소리를 지르고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고,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나가 바빠 예상하기 힘든 행동들을 했다. 땅을 느닷없이 뒹굴기도 하고 끊임없이 이상한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화장실 실수도 종종 있었다 했는데, 나와 있는 시간 동안에는 학교에서 실수를 하진 않았다. 학교의 권유로 학교 오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아이의 특수학교 전학 원서를 넣고 기다리는 상황이었어서 그 기간 동안만 봐달라는 뉘앙스였다. 

그냥 아이와 있어주면 되는 것이었는데, 나의 오지랖과 책임감은 '그냥 있어주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길게 있던, 짧게 있던 같이 있는 동안은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눈을 잘 쳐다보지 않는 이 아이의 관심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몇 가지를 빨리 파악해야 했다. 그리곤 좋아하는 것들로 관심을 끌고 그 관심사를 학습에 접목하여 반복해서 알려주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아이가 장난감 같은 사물들이나 장소, 혹은 그림들을 손으로 가리킬 때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단어를 알려주었다. 단, 말을 길게 해선 안된다. 긴 표현은 아이에게 혼란이 되고 집중력이 짧은 아이이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What is it? it is called 'APPLE'! " 아니라 

" APPLE "

" A-P-P-L-E "  (phonic으로 소리만 낸다)

이렇게 무언가를 가리키거나 만질 때마다 포인트 단어만 알려주었다. 


그렇게 같은 말과 단어를 반복하던 어느 날, 

아이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A라는 자석 레터를 집고는 '아! 아플!' 하지 않는가... 

 ( A는 포닉스 사운드로 영국에서는 '아'로 가르친다)

마침 담임 선생님도 옆에 계셔서 그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었고, 서로 감격의 눈 마주침을 주고받았다.


바로 나는 B를 들고는 '브! 바나나!' 하자, '브! ' 하고 따라 했다. 

그렇게 아이는 알파벳 Phonics를 끝까지 소리 내었다.


안 듣고 있는 것 같았지만 다 듣고 있었고 반복되는 그 소리를 캐치해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격스러웠고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단 두 시간이지만 집중도가 낮은 이 아이에게 두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의 아이는 학교에서의 루틴을 이해하고 그 패턴에 익숙하게 도와주었다. 


학교에 오는 시간, 

와서 러닝을 하고 

10시 15분 브레이크 타임을 위해 교실밖을 나가고 

30분에 교실에 돌아와서 스낵타임을 하고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이 아이에겐 루틴을 이해하기 위한 훈련인 것이다.


아이가 하는 나름의 의사표현으로는 특정 사진을 가리키거나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의 손을 이끌고 가는 것 정도였다. 아이가 흥분하거나 무서워할 때 곱슬곱슬한 짧은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면 감각에 예민한 이 아이는 마음이 진정되는지 흥분도가 낮아지며 얌전해졌다. 그렇게 나는 이 아이와 조금씩 bonding 되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이 아이의 귀로 들리는 세상은 어떤지.. 

이 아이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아이가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해도 이상하게 이 아이가 밉진 않았다.. 

어떠한 행동을 하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오히려 이 아이에겐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을 거란 알기에...

이해하고 싶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 아이의 세상이 궁금했다. 


'너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니...?'


그렇게 나도 이 아이를 알아가며 지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수학교에서 자리가 나면서 그곳으로 전학 갈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이가 지내기에 이 평범한 학교는 그 아이에겐 되려 너무 특별한 학교였다. 그 아이를 더 이해해 주고 그 아이를 위한 학교가 필요했다


아이가 떠났다.

 Year R (유치원) 에는 이미 TA선생님이 계셨고 K 군이 떠난 상황에서 내가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겠구나 싶어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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