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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경쟁

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05

by 시나브로

탕후루에 중독된 사람처럼, 나는 매일 하루에 한 장씩 독후감 활동지를 가져가
시간이 날 때마다 독후감을 작성했다. 예전에 읽었던 책부터 시작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책은 다시 도서관에 가서 책을 펼쳐보고,
감명 깊었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

줄거리를 소개하는 독후감,
어떤 장면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낸 독후감, 그림으로 표현한 독후감,
상상을 기반으로 작가와 소통하듯 써 내려간 독후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후감을 작성해 나갔다.

독후감을 쓰고 받은 스티커를 하나씩 쌓아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1등을 달리던 친구 역시 분발하고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와 그 친구가 회자되곤 했다.
“누가 독후감을 제일 많이 냈는지, 오늘은 누가 앞섰는지”
매일매일 바뀌는 순위에 관심을 가지며, 그걸 세는 재미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

당시 선생님은 이런 경쟁 심리를 잘 활용하셨던 것 같다.
독후감을 제출하면, 각자의 이름이 적힌 클리어 파일에 넣어 정리해 주셨고,
친구들이 서로의 독후감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다른 친구들이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창작의 시작은 모방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독후감을 읽고, 나도 그 책을 빌려 읽어보면
왜 그런 감상을 남겼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긴 마라톤처럼 독후감 경쟁을 이어갔지만,

그해 겨울방학, 수십 개의 독후감을 몰아 제출한 그 친구에게
몇 개 차이로 밀려 2등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보상 없이 읽던 시간과 보상을 바라보며 읽던 시간을 비교해보면

전자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이기도 했고,
그 점이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책이 좋아서 읽었다기보다는
독후감 개수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책을 읽은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독서를 경험해보고,
그 경험이 나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 독서를 꾸준히 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면—
그것 또한 소중한 일이다.

무엇이 되었든, 책과 가까이 지낸 시간은
나를 한 단계 성장하게 했고, 조금 더 풍성한 생각을 품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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