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04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이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매일 친구들과 뛰노는 시간보다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작은 수첩에 친구들 집 전화번호를 적어두곤 했다.
하교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가방을 내려놓고는
공원이나 운동장, 놀이터로 뛰어나갔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잠들기 전 학교 숙제가 있으면 하고(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후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그동안 책을 읽고 떠들기는 했지만,
감명 깊었던 내용을 글로 기록해본 적은 없었다.
독후감 작성 방식은 다양했다.
책을 읽고 떠오른 장면이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도 되었고,
일반적인 독후감처럼 책의 줄거리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써도 됐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독후감 숙제를 해 제출했다.
다음 날, 선생님이 따로 나를 불렀다.
독후감에 그린 그림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던 것 같다.
나는 기억나는 대로 뭐라뭐라 답을 했고, 선생님은 이내 웃으며 "알겠다" 말했다.
앞으로도 자유롭게 독후감을 제출해도 좋다고 말씀했다.
그 무렵, 교실 뒤에는 새로운 게시판이 하나 생겼다.
이름하여 ‘독서 꿈나무’. 반 친구들의 독서와 독후감을 활성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독후감을 선생님에게 제출할 때마다 "잘했어요" 스티커를 받아 자신의 이름 뒤에 하나씩 붙이는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영업사원이 자신의 성과를 하나씩 쌓아가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때, 누군가의 이름 옆에 스티커가 세 개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어디선가 끓어오르는 경쟁심이 피어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