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

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03

by 시나브로

도서관은 그곳만의 ‘공기’가 있다.

다소 차가운 느낌과 곰팡이 냄새 같은 눅눅함.

책을 넘기는 소리와 소곤소곤 대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서로 눈을 마주치기보다는, 마치 마트에서 다양한 음료수를 바라보며
‘어떤 음료를 고르면 지금 느끼는 갈증이 사라질까?’ 하고 고민하는 모습 같았다.

처음에는 불도저처럼 책을 검색하고, 대출 가능 여부만 확인한 뒤
그 책 하나만 찾는 데 집중하며 전진했다.
마치 퀘스트에서 왕 하나만 처치하려는 일념으로,
다른 몬스터는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태도처럼.

하지만 도서관을 자주 다니다 보니,
원하는 책 하나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 놓인 다른 책들의 제목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잘못 골라 대출한 적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접하지 못했을 작품이기에 오히려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책 취향이 생기게 된 배경 중 하나는
당시 느낌표(!) 프로그램에서 선정 도서를 지정해 주었고,
그 책을 사서 읽는 것이 하나의 문화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양한 책과 여러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면서
‘나에게 맞는 문체인지’,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인지’ 등을 판단하게 되었고,
그러한 기준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책 취향이 형성된 것 같다.

이어령 선생은 책을 “친구”에 비유했다.

누군가가 나타나 “이 친구와 사귀어라!” 한다고 해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보며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친구가 되듯,
책 역시 친구를 사귀듯 직접 부딪히고 읽으며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 역시 책과 친구가 되어 간다는 생각으로,
어떤 책은 완독 하고, 어떤 책은 어렵거나 재미가 없어서 중간까지만 읽고 도서관에 반납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채우기보다는,
스스로의 만족감을 채우는 데 더 집중했던 것 같다.

keyword
이전 02화아버지의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