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02
어릴 적부터 책을 빌려 읽을 때, 나에게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 그저 ‘감’에 맡겼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나 작가의 삶의 궤적과 직접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책을 선호했다.
소설을 읽게 되더라도 판타지 소설(당시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도 좋긴 했지만)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선호했다.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 예를 들면 청소년 소설이나 가족 소설 등을 주로 읽었다.
이러한 책을 읽게 된 배경 중 하나로 추측해보건대, 아버지의 영향도 큰 것 같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버지는 책을 가까이하며 지내셨던 분이다.
(지금은 눈이 침침하다고 하셔서 책보다는 유튜브나 오디오로 일본어를 듣고 계신다.)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을 책을 빌리기 위해 나와 함께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곤 하셨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면, 아버지도 본인의 독서 취향에 따라 책을 대출하셨다.
그렇게 아버지가 빌려온 책이 궁금해서 내가 먼저 읽어보기도 했다.
그때 아버지가 빌려보셨던 몇 권의 책 중,
양귀자의 『모순』(인간관계 속에서 인간 내면을 다채롭게 다룬 소설 - 작성자 주관),
김정현의 『아버지』(아버지를 둘러싼 시대적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 부성애가 기억나는 소설 - 작성자 주관)는 지금도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처럼, 아버지의 독서 습관과 취향은 나와 일정 부분 잘 맞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피어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아버지에게 질문하면, 언제나 웃으며 대답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렇기에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도 같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평일에 ‘미션’을 주시기도 했다.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메모지에 적어 주시며, 도서관에서 대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부탁이었기에, 책임감을 갖고 성실히 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