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을 배우는 사람
오래 달려온 사람은 멈추는 것을 모른다. 아니, 더 정확히 멈추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달리는 동안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멈추면 생각이 온다. 오래 달려온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래서 더 달린다. 멈추지 않기 위해. 그런데 결국 멈추게 된다. 선택이 아니라 몸이 먼저 멈춘다. 루이가 그랬다. 이삼 년의 피로가 결국 루이를 여기로 데려왔다. 멈출 수밖에 없는 곳으로.
마흔 세 번째 세션. 루이가 오래간만에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창밖을 봤다. 봄꽃이 진 자리에 초여름 잎이 가득했다. 루이는 그것을 오래 봤다.
"요즘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좋아요."
"언제부터요?"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그냥 창밖 보는 게 좋아졌어요. 빈 시간이 있어도 불안하지 않아요."
"예전엔요?"
"예전엔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쉬고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근데 요즘은 그냥... 괜찮아요."
뒤처진다는 것. 그것이 루이를 오래 달리게 한 감각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증명해야 한다. 그 감각이 언제부터였는지를 루이는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다. 너무 오래전부터였으니까. 다락방 안에서도 루이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생각했다. 언제 나가면 되는지, 밖의 소리가 잦아들었는지. 몸은 가만히 있어도 머리는 달리고 있었다. 그 달리기가 평생이었다. 그런데 지금 창밖을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루이가 말했다.
"나의 평온이 일시적인 휴식이 아니라 삶의 기본값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으면서 손이 멈추었다. 나의 평온이 삶의 기본값이 되기를. 이것이 루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말한 문장이었다. 지금까지 루이는 현재의 것들을 말했다. 지금 피곤하다, 지금 힘들다, 지금 이만저만 나쁘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앞으로를 말했다.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바람이 소박하면서도 깊었다. 평온이 기본값이 되기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루이가 원하는 삶의 온도였다.
창 가 에 초 여 름 햇 살 이 스 며 들 고
세션이 끝나고 루이가 나가면서 오븐을 한 번 봤다. 늘 보던 것이었는데 오늘은 그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섰다. 그리고 말했다.
"저 오늘 집에 가면 뭔가 만들어야겠어요."
"뭘 만들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만들다 보면 알겠죠."
만들다 보면 알겠죠.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처음 왔을 때 루이는 이유가 먼저였다. 이유를 알아야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만들다 보면 알겠다고 한다. 과정이 먼저가 된 것이다. 그것이 루이가 달라진 것의 가장 선명한 증거였다.
평온이 일시적인 휴식이 아니라
삶의 기본값이 되기를.
루이가 처음으로 앞을 보며 말했다.
창밖의 초여름 잎이
햇살 안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기록: 마 흔세 번째 세션
루이가 평온이 기본값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이 아직 먼 곳의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그것 자체가 이미 변화다. 처음 왔을 때 루이는 앞을 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 충분히 벅찼으니까. 지금은 앞을 본다.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이미 다른 곳에 서 있다는 말이다.
참고 문헌 · 18
²⁰ Csikszentmihalyi, M. (1990).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 Harper.
진정한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현재에 머무는 것이다. 루이가 창밖을 보는 것이 좋아졌다는 것은 — 처음으로 현재에 머무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뒤처진다는 불안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