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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서정 May 30. 2024

씽씽이

소년에게 간밤에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그 아이는 빨간색 씽씽이를 타고 등교했다. 씽씽이는 앞 바퀴가 2개이고 뒷 바퀴도 광폭이어서 교차로에서 녹색신호를 기다릴 때 안정적이었고 기울거나 넘어지지 않았다. 앞 바퀴에 LED 등이 있어 교차로를 가로질러 갈 때 바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학부모와 같이 등교하며 씽씽이를 타는 유치원생 말고 초등학생은 그 아이가 유일했다. 그 아이 등교길은 주택가 2차선 이면도로이고 학교 후문앞 사거리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길이다. 아파트와 빌라가 섞인 지역이어서 등교시간이면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가 이면도로로 쏟아져 나온다. 출근 차량도 많았고 학원이나 유치원 등교버스도 그 도로를 지났다. 인도가 차도와 분리되지 않은 좁은 길이다. 인도는 폭이 1미터 정도이고 바닥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고 차도와 노란 실선으로 나뉘었다. 교차로 앞 차도는 붉은 페인트 칠이 있었고 어린이 보호 구역이니 시속 30km 이하를 지키라는 표시가 있었다. 좁은 오르막 길을 그 아이는 씽씽이를 밀고 왔다. 그는 씽씽이 손잡이 왼쪽에 책가방을 걸었다. 비 예보가 있는 날에는 손잡이 한쪽에 가방을 다른 한쪽에 우산을 걸고 씽씽이를 몰았다. “가방을 등에 메고 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라고 하였지만 그는 나를 그냥 빤히 쳐다보고 그냥 지나갔다. 

후문 앞 사거리에서 교통 안내를 끝내고 수업시간에 교내를 돌아다니다 3학년 복도에서 빨간색 씽씽이를 보았다. 복도 창가 벽을 따라 신발주머니를 걸 수 있는 고리가 있고 학생 번호를 표시해 놓았다. 아이들은 등교하면 복도에서 운동화를 벗고 신발주머니의 실내화를 꺼내 갈아 신는다. 씽씽이도 신발주머니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등교시간에 교통 안전지도를 마치고 교내를 순찰하는데 그 아이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다가가 보니 딸각딸각하고 소리가 났다. 복도 끝 방화문 옆에 서서 문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하니? 수업시간인데.” 라고 하였다. 그는 “교실이 너무 더워요. 그런데 이게 왜 안 돌아가요?” 라고 엉뚱한 질문을 하며 방화문을 닫으려 했다. 아침에 비가 와서 서늘한 봄날이었다. 실내화를 신지 않은 맨발이었고 머리와 발이 약간 젖어 있었다. “여기 단추가 잠겨 있네. 잠깐 이렇게 하면 되지.” 하며 똑딱하고 단추를 풀었다. 그는 손잡이를 잡고 계속 좌우로 돌렸다. 수업하던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왔다. 아이를 보고 말했다. “지우(가명)야, 너 혼자 이렇게 복도에 나와 있으면 내가 교실에 있는 친구들과 수업할 수 없어. 교실로 들어가자!” “너 때문에 반 친구들이 집중할 수 없잖아.” 아이는 거부했다. 그냥 더워서 복도에 있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애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교실을 나가더니 운동장을 쏘다니다 여기서 이러고 있네요. 제가 수업을 해야 해서 아이를 돌볼 수 없네요. 잠깐 애를 봐 주시겠어요? 아이 어머님과 통화해 볼게요.” 선생님이 몇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아이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은 해맑았지만 눈은 공허했다. 아이는 내가 잡은 손을 뿌리치려 하였다. 선생님이 아이 엄마와 통화에 성공했다. 아이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아이 엄마가 통화를 요구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전화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핸드폰을 수평으로 들고 마이크 부위에 귀를 대고 말하려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보다 못해 선생님이 스피커폰 단추를 눌렀다. “너 거기서 뭘 해, 빨리 수업에 들어가!” 라는 아이 엄마의 고함이 들렸다. 선생님이 얼른 핸드폰을 빼앗았다. 선생님이 핸드폰을 들고 복도 계단으로 내려가서 아이 엄마와 통화했다. 선생님이 부탁했다. “학부모가 데리러 오기로 하셨어요. 저는 수업을 해야 하니 그 동안 아이를 좀 봐 주세요.” 나는 아이가 가는 곳을 조용히 뒤따랐다.


아이는 불안했고 진정을 못했다. 보건실에 가겠다고 해서 따라 갔는데 막상 문 앞에서 들어가길 주저했다. 손을 잡고 보건실로 들어갔다. 보건교사에게 아이가 불안해한다 진정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사가 어디가 불편하냐고 묻자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아이는 상담의자에 앉지 않고 벽면에 놓인 긴 소파에 올라가 젖은 맨발로 쿵쿵 뛰었다. 보건교사가 아이의 손을 잡고 끌어내렸다. 눈을 응시하며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훈계를 하자 아이는 “나 갈래요.” 하면서 보건실을 나가 버렸다. 얼른 따라가서 아이를 붙잡고 책을 보러 도서실에 가자고 인도했다. 도서실에 갔다. 투명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열람실에서 학생들의 독서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그는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들어가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그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무엇이 그를 불안하게 했을까? 아이는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했다. 비는 그쳤지만 아침에 내린 비로 운동장은 젖어 있었다. 바람도 불었고 쌀쌀했다.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안된다고 했다. 나도 젖은 운동장을 배회하긴 싫었다. 교실에서 수업 소리가 조금씩 들리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를 1층에서 4층까지 오르내렸다. 아이가 복도에서 뛰어다니지는 않았다. 


교실로 돌아 가기로 했다. 별관에 있는 도서실에서 본관 3층에 있는 교실을 향해 가는데 복도 끝에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아이를 보자 저편의 아버지가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이는 멈춰 섰다. 내 손을 뿌리치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적막한 복도에 부자가 마주 보고 섰다. 아이 아버지가 다가왔다. 우비를 입었다. 아마 오토바이를 타고 온 모양이었다. 언젠가 등교시간에 교차로에서 남성을 본 기억이 났다. 그날 9시가 다 된 시각에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아이는 그날 씽씽이를 타지 않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등교했다. 녹색신호로 바뀌길 기다리는 순간에도 지각했다고 아이를 몹시 나무라던 남성이었다. 아이는 남자의 손에 잡힌 채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꾸중을 듣고 있었다. 남자는 얼굴빛이 불그락 푸르락 했다. 흥분해서 그랬는지 간 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 아버지가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와 아이 손을 낚아챘다. 가까이 보니 남자의 얼굴은 흥분했는지 빨갰다. 순간 나는 아이를 그냥 보내야 하나 하고 속으로 잠시 갈등했다. 선생님의 요구사항은 분명했었다.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조용한 복도를 말없이 걸어 나갔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복도 순찰을 계속했다.


다음 날 그 아이는 평소처럼 등교했다. 손잡이 왼편에 가방을 걸고 왼발로 땅을 박차며 빨간 씽씽이 밀면서 교차로에 나타났다. 반가웠다. “안녕!” 이라고 큰소리로 인사했다. 그 아이는 답없이 그냥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질러서 달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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