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 THE RECORD Jul 03. 2019

나는 욕구를 발견하는 선생님입니다

나는 선생님입니다(1) 이우학교 김주현 선생님

2019 온더레코드 기획 '나는 선생님입니다'의 첫 인터뷰의 주인공은 온더레코드에 오실 땐 늘 학생들과, 또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오셔서 배움을 나누는 김주현 선생님입니다. 기업에서 IT 관련 일을 하다 정보 교사로, 그리고 다시 진로 교사로 몇 번의 각성의 순간을 지나며 ‘내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진로를 찾는 시작점임을 알게 된 후로 학생들과 함께 욕구와 욕망을 찾는 14일 프로젝트와 주제탐구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생이 배움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게 결코 아닙니다. 과목이나 직업으로 설명할 수 없더라도 누구나 자기만의 욕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어요.


2014년 세바시에서 <14일간의 욕구 발견 프로젝트>를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왜 ‘욕구’인가요?


결국 진로를 찾는다는 건 자기다움을 발견하거나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제 지난 인생도 다양하게 부딪혀보기보다는 일반적인 트랙 위에서 움직여왔기에 과거로 돌아간다면 욕구나 욕망에 솔직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선 뭐든 해봐야 하거든요. TED 영상 중 맷 커츠의 ‘30일 동안 새로운 것 도전하기’에서 영감을 받고 욕구와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학생과 같이 해보기로 했습니다.


개인적인 욕구나 욕망을 학교 수업의 소재로 다루면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처음부터 욕구와 욕망이 금방 찾아지지는 않는 데다 단순한 낮은 단계의 욕구와 강렬한 욕망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14일간의 욕구 발견 프로젝트>를 시작할 땐 습관이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강렬한 프로젝트의 느낌을 원했지만 쉬고 싶거나 잠자고 싶은 욕구부터 좌절했던 욕망을 다시 꺼내서 재도전하는 학생까지 다양한 레벨의 주제가 나왔어요. 특히 진로 수업에서의 프로젝트는 직업을 의식하고 연결하려는 학생이 많아요. 그래서 한 번은 미래의 직업을 다 떠나서 내가 순수하게 ‘배우고 싶은 욕구’로 한정하고 ‘선택과목을 개설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오만가지 아이디어로 답하더라고요. 듣기만 해도 재미있었어요. 학생이 배움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게 결코 아니라는 걸 그때 확인했죠. 과목이나 직업으로 설명할 수 없더라도 누구나 자기만의 욕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과목을 넘어서서 배우고 싶은 것을 자기가 선정하고 학습자원을 찾는 <주제탐구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왜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나요?


문제 공감 프로젝트와 주제탐구 프로젝트로 세상과 배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이 10년씩 학교를 경험하다 보니 시스템을 정말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구조에 종속되거나 매몰되어 버리죠. 수업이 열리지 않거나, 교과서 같은 공식적인 매뉴얼이나 선생님이 없다면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선택과목이 아무리 많이 열려도 학생 하나하나의 욕구를 절대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학교를 원망하거나 원하는 과목을 개설해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하는 학생이 많아지죠. 그렇다면 '학교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라고 가정하고 익숙했던 학교의 개념을 버려봤어요. 최근엔 개별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모든 경험이 유의미한 경험은 아닙니다. 힘들더라도 하는 일에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프로젝트 기간은 얼마나 두는 것이 좋은가요?


한 학기 동안 기회를 주지만, 한 가지 주제를 끌고 가기엔 어른도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학사일정을 살펴보니 중간중간 행사가 많아 리듬이 끊어져서 분기 단위도 길더군요. 실험해보니 한 가지 주제를 끊김 없이 할 수 있는 게 한 달이었어요. 4주를 1라운드로 잡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진로 수업보다 제 진로를 확실하게 정해주는 것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도 공부를 했던 학생이었습니다. 진로 교사로서 이런 생각을 마주하면 어떤가요?


진로교육이 직업과의 매칭이 아니라면 무엇이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진로적성검사를 해석해주다 보면 세상의 변화 속도를 볼 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 문제도 아닌 ‘내 문제야!’라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진로를 찾는 첫 번째 경로로 욕구와 욕망에 집중했고요. 이어 여러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업가정신교육, 디자인씽킹, 메이킹을 접하다 보니 특정한 문제의식이 자기 진로를 찾아가는 두 번째 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보통 진로교육은 직업과 많이 연결되어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경험담을 듣거나 만남의 자리를 가지기도 하는데 다음 세대를 만날 때는 어떤 점이 중요한가요?


모든 경험이 유의미한 경험은 아닙니다. 힘들더라도 하는 일에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도 자기 직업을 애정 하지 않는 사람은 부정적인 에너지만 전달하는 경우가 있어요. 일을 한다는 건 분야의 전문성보다는 태도를 갖추는 일 같습니다. 배우고 싶은 게 있을 때 배움에 접근하는 방법과 태도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과 진로의 연결을 끊어야 합니다. 떼어내기만 하면 안 되고, 직업 대신 배움이라는 키워드와 연결시켜줘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배움과 학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죠.

어디에서부터 진로교육을 시작해야 할까요?


우선 직업과 진로의 연결을 끊어야 합니다. 떼어내기만 하면 안 되고, 직업 대신 배움이라는 키워드와 연결시켜줘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배움과 학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죠. 당장 학과나 직업이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겠지만 끊어내야 합니다. 계속 불안을 느끼는 학생에게는 ‘배우려고 할 때 상상이 안되더라도 절대 걱정하지 마. 지금은 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아. 새로운 전공으로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줍니다. 요즘은 학과를 스스로 만드는 대학교도 있습니다. 배움의 호기심을 유지하며 활용 가능한 자원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발견하고, 빠르게 조직해서 배우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유하는 이 흐름이 자신의 인생에서 반복되는 사람으로 크길 바랍니다.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모두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욕망은 배움의 욕망으로, 진로탐색은 직업이나 학과가 아닌 내가 배우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 청소년 시기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3이 되면 입시라는 블랙홀이 존재하죠.  


세상에 대한 촉을 계속 세우는 방법이 있나요?


각자가 가진 각성의 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점들은 다를 거예요.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지금 하는 걸 반복해서는 택도 없겠다’는 위기의식 정도의 무게감입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세상의 변화를 보러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나, 구조적으로 변화된 환경이 주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전까지는 개인이 애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도 각성과 위기의식에서 나오죠. 수업이 잘 안될 때는 자존감이 낮아졌다가도 잘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요. 선생님이라는 정체성 때문인데 만약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면, 같이 배우며 즐거워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학생이 자극을 받거나, 학생이 배우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이 반성하는 지점이 있다면 학교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각성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직장생활 3년 차에 IMF가 터졌습니다. ‘개인적으론 열심히 살았음에도 조직의 이유로 이렇게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팀마다 명퇴자를 선정해서 보고하는 상황을 마주했죠. 세상의 변화를 체감했어요.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평생직장은 없고 바깥에는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40대가 되었을 때 이 파도의 충격을 또 받을 자신이 없었어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파도를 피하기보다는 올라타서 변화를 온몸으로 맞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진 퇴사 신청을 하고 나왔습니다.


IT업계에서 일하다가 교사가 되었습니다. 어땠나요?


기업 현장에서 일도 했었고, 프리랜서 강사를 하면서 전 분야에 대해 지식도 있었고, 학교 현장에서는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보교사로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서 각자의 생각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표현의 도구로서 디지털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어요. 2009년에 처음으로 아이팟 터치를 사고, 앱을 설치하고, 트위터라는 네트워크를 경험하면서 ‘손 안의 컴퓨터’라는 말을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제품이 주는 사용자 경험은 놀라웠고요. 기존에 알고 있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인지한 이후로 기존에 가르쳤던 것을 모두 다 바꾸었어요.


지금, 변화를 다시 맞이하는 촉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소위 우리나라에 미국 같은 글로벌한 혁신이 없는 이유는 차고가 없어서라고 하죠. 그동안 저는 무책임하게 질문만 던졌어요. ‘학교가 만약 차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학교가 메이커 스페이스가 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하고요. 학교의 변화와 관련된 포인트가 여기에 있습니다. 차고든 메이커 스페이스든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건 없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의 주제가 깊어질 수 있도록 전문가와 환경을 갖춘 곳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학생과 교사가 수요일 3-4교시는 과목 없이 시간표를 비우고 모두가 동등하게 배우는 거죠. 교사는 그저 경험이 많은 학습자일 뿐 학생도 교사도 배우고 싶은 주제를 제안해서 피칭하고 팀을 이루어 과목을 만들고 수업시수가 인정되면 어떨까요. 생각의 시작은 근본적으로 학교가 학생과 교사 모두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학교라는 시스템 아래서 실험은 쉽지 않기에 따라 할 수 있도록 학교 밖에서의 실험이 꼭 필요합니다.


온더레코드는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학교의 교육과정이 다양하게 펼쳐져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이 어떤 순간에 각성하거나 강한 자극과 변화의 순간이 올 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더레코드를 찾아오는 교육자와 학생은 각자 이유가 다르겠지요. 제가 이 곳을 소개하며 자주 쓰는 표현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교육혁신과 관련해서 2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가장 많은 것을 폭넓게 확인하고 싶으면 온더레코드로 가라.’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는 큐레이션으로의 변화가 반갑습니다.




실험의 시행착오를 듣고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결국 한 교육자의 삶을 되짚는 일입니다. 결정적인 선택과 순간은 일상의 생각과 시도들로 만들어지기에 앞선 과정을 찬찬히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진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결승점이 아니라 나아가는 길 위에 서있다는 건 선택지를 넓히고 기회를 만들 수록 각자의 탐험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움의 호기심을 유지하며 활용 가능한 자원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발견하고, 빠르게 조직해서 배우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유하는 이 흐름이 자신의 인생에서 반복’된다면 우리 앞에 훨씬 많은 길이 새롭게 펼쳐지리라 생각합니다.


글 & 인터뷰. 황혜지, C Program 러닝랩 매니저



매주 수요일 온더레코드의 뉴스레터가 새로운 배움을 전합니다.

온더레코드의 소식이 궁금하거나, 자극이 필요하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http://bit.ly/ontherecord-weekly

이전 01화 나는 선생님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