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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Aug 07. 2019

나는 낯선 경계로 안내하는
선생님입니다.

나는 선생님입니다 (6) 이천양정여자고등학교 이태경 선생님

2019 온더레코드 기획 '나는 선생님입니다'의 여섯 번째 인터뷰는 이천양정여자고등학교 이태경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지난해 10명의 청소년들의 성장을 따라가는 인터뷰 시리즈 ‘틴스토리’에서 고등학자와 메이커 스페이스 프로젝트를 했던 두 명의 학생을 만났습니다.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었는데, 바로 이태경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도 학교 안팎의 경계에서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만들고 있는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해외영업직에서 교사로의 이직이 흥미롭습니다. 


대학에서 언어를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 무역이나 해외영업의 길을 걷습니다. 선배들을 따라 하게 된 해외영업직은 언어만 중국어일 뿐 온통 철강이나 금속에 관한 일이었어요. 관심분야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스스로 동기 부여하기 어려웠죠. 회사를 그만둔 뒤에 이직을 준비하며 중국어 강사 자리를 추천받았는데 제가 배우면서도 좋아했던 중국어를 학생에게 전하는 작업이 꽤 재미있었어요. 그러면서 교육에 관심이 생겨 교육대학원에 진학했죠. 회사생활을 할 땐 일을 더 잘하려고 퇴근 후에 공부한 적이 없었는데 학교에서는 내일 더 좋은 수업을 하려고 자기 전까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교사로 커리어를 바꾸면서 생각했던 선생님의 모습이 있었나요?  


처음엔 중국이라는 나라와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중국어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이 되기를 바랐어요. 중국어 교사 커뮤니티에서 연극이나 음악으로 중국어 수업하는 방법들을 많이 나눴죠. 하지만 여전히 일정한 범주 안에 있었어요. 지금은 교사의 커리어가 쌓이면서 교과 이외에도 교사로서 갖추고 싶은 모습에 대한 바람이 더 커요. 학생들과 공감하며 대화하고, 학교 밖의 다양한 세상을 살펴보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비교과 수업에서 학습을 촉진하는 역할들이죠. 



실제로 학교 안에서 담당하시는 교과 이외에도 많은 프로젝트를 운영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학생이 학교 안에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창업가정신교육과 체인지메이커 학교, 비교과나 교육프로그램으로서의 예술이 이난 삶을 누리고 표현하는 환경을 만드는 학교 안 예술학교, 주체적으로 배움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고등학자 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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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학교에서 해야 하는 것인지 먼저 고민해요. 입시를 앞두고 있더라도 청소년기에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선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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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만들거나 선택할 때 기준이 있나요? 


꼭 학교에서 해야 하는 것인지 먼저 고민해요. 수준으로 나누기보다는 꼭 학생에게 필요한지, 역량과 이어지는지, 자발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경험의 폭을 늘릴 수 있는지, 청소년기에 경험할 필요가 있는지, 자신의 고유성을 알고 목소리를 내는데 도움이 되는지 들입니다. 결국 방향은 미래교육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있어요. 입시를 앞두고 있더라도 청소년기에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선하고 있어요. 



학생이 학교에서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보여주는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왜 이 방법을 선택하셨나요? 


첫째, 호기심을 심어주는 건 강력한 배움의 욕구를 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둘째, 배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세상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역시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생깁니다. 이 두 가지에 우선하는 이유는 청소년이 세상과 만나고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낯선 경계로 안내하는 지금의 선생님에게 영향을 주었던 경험이 있나요? 


교육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교육 해커톤에 참여했었어요. 다수가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인 곳에서 교사는 소수였죠. 교육을 주제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와, 교과가 아니어도 얻을 수 있는 넓은 경험의 폭과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시도하고 있는 많은 프로젝트 역시 학교 내부의 역량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아요. 학생이 지식을 쌓아 교실에서의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세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모든 경험이 교사에게만 모여있지 않도록 사회의 자원들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교육적인 가치가 있고 학교에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라면 시작했어요. 그러다 시작한 창업가정신교육은 그저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 전부였죠. 짧은 시간 안에 학생이 세상에서 찾아낸 기회와 문제, 가치를 쫓아 도전하고 만들어낸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는 걸 확인했어요. 이 이야기가 밖으로는 책으로, 다큐로, 학생의 목소리로 퍼져나가고, 학교엔 후배들에게 전해져 문화로 자리 잡았어요. 5년째 체인지메이커 학교가 지속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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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프로그램이 좋으면 학생의 반응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순전히 교육자로서의 생각이었어요. 교육적인 필요가 있다고 해서 학생이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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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도하는 프로젝트의 신선함이 주는 학생의 관심과 몰입과는 달리 프로젝트를 지속하면서 모든 학생을 만족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낮은 참여율로 나타나기도 하고요. 


교육프로그램이 좋으면 학생의 반응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순전히 교육자로서의 생각이었어요. 창업가정신교육을 하면서도 좋은 프로그램에도 학생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어요. 의외로 많은 수의 학생들이 몇 번 하고 안 나오거나, 수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려 하지 않더라고요. 교육적인 필요가 있다고 해서 학생이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학교가 충분히 새로운 시도를 하고 뛰어 놀 환경이 만들어져있지 않은 데다 필요성도 실질적으로 얻게 될 이득도 보이지 않는 프로그램을 교육자가 좋다고 해서 할 수는 없어요. 그 이후로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환경을 학교 안에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요즘은 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활성화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요? 


학부모의 지지 없이는 학생의 동력을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체인지메이커 학교나 학교 안 예술학교처럼 네 학기 이상 이어가야 하는 프로젝트는 특별한 신청서를 받습니다. 앞장에는 학생에게 하고 싶은 이유와 만들고 싶은 변화를, 뒷장에는 학부모에게 학생의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허락한다면 지지하는 이유를 적게 합니다. 몰랐던 자녀의 생각에 놀라며 지지글을 적어주시는 분들도 많죠. 



교사가 학교 안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어떤 것을 준비하면 좋을까요? 


학교 일로 바쁜 상황에서도 계속 밀고 나가기 위해선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합니다. 유행 따라 하기보단 스스로 왜 해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를 만들면서 학교의 비전과 연결 지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이유보다는 왜 우리 학교에서, 왜 1학년 때 해야 하는지 학교 교육과정안에서 계획하는 프로그램의 위치를 찾아보는 거죠. 지금 하고 있는 시도들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자신에 대한 신뢰와 이 믿음을 지지해주고 함께 해주는 동료, 실제로 일어나는 학생과 학교에 긍정적인 변화가 제가 시도를 지속하는 힘입니다. 



내일, 선생님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하던 걸 잘하고 싶어요. 하던 거니까 계속해야 한다기보다는 프로젝트의 의미와 가치를 보고 시작했던 만큼 시도와 좋은 결과에 만족하고 끝내기보다는 지속할 수 있도록 뿌리내리고 싶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세상을 향한 더듬이를 세우고 있을 거예요. 세상이 변하면서 계속 필요한 것이 생기기에 다양한 답을 만들면서 나아가야 하죠. 배우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도 그만큼 다양할 거예요. 추구해야 할 새로운 교육적 가치와 시도들,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향해 더듬이를 세우고 학교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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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에 성인이 될 현재 중학생들에게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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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목하고 있는 교육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미래교육입니다. 미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2030년에 성인이 될 현재 중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29개 국가가 참여한 OECD 미래교육 프로젝트의 연구결과에서는 역량은 지식과 지식을 다루는 스킬, 태도가 합쳐져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배움은 정답을 말하기보다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다양해지면서 심화되는 갈등의 긴장감을 조절하고, 선택에 대한 충분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방향을 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는 이 결과들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수행평가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사한 것을 온라인 백과사전에 등재하여 인터넷 환경에 기여해보거나, 학교에서 새로운 공간을 건축할 때 직접 사용자 경험을 조사해보고 분석하여 설계에 반영하면서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보고 있어요. 또 자신의 고유성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미래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문해력(디지털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신체 문해력) 등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 사회에 참여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의식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관련해 학교의 지원을 받아 환경을 만들거나 직접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나 교과학습을 만들며 지원하고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교사도 학생 때의 한 번의 배움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먼저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과 연계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의 이슈, 이용 가능한 자원, 교육 방법과 사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접근이 쉽고, 아카이빙되어 재가공이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보가 모이는 커뮤니티, 필요한 것을 배우기 위한 재정비의 시간, 교육적 시도와 실천을 위한 재정적 지원,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변화에 대처하면서 배우는 법을 알아야 하는 다음 세대를 만나는 교사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인터뷰 노트 

김초엽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단편 소설들에는 인간과 다른 행성의 외계인, 같은 일을 하게 된 전 세대와 다음 세대, 사후 데이터화된 마인드와 생존자, 인간과 물건, 다른 행성으로 떠난 가족과 길이 끊긴 남은 가족의 관계가 담겨있습니다. 단절 되었던 관계들이 다시 이어지면서 단절된 이후 잊혀졌던 존재들의 면모가 자세히 보이고 관계는 더 특별해집니다. 나는 선생님입니다의 여섯번째 인터뷰, 이태경 선생님과의 대화를 정리하며 학생이 교실에서의 지식을 세상에서 확인하고,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동료를 만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대목에서 소설의 장면들을 떠올렸습니다. 학교 안과 밖이, 배움과 실제 세상이 언뜻 멀어보이지만 만났을 때 멋진 일들이 일어나니까요.


글 & 인터뷰. 황혜지, C Program 러닝랩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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