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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May 04. 2020

유쓰망고, 삼정중을 만나다.

학생들의 배움을 공개하며 함께 성장하는 학교를 소개합니다.

온라인 개학 이후 학교의 역할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부쩍 많아졌다. 온라인 강의 형태로 학습이 장기화될 경우 기존의 인터넷 강의나 사교육과 다를 바 없다는 볼 맨 목소리도 들린다. 이런 의견은 사실 반갑다. 학업 이외에도 우리가 학교에 기대하는 바가 있음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장을 돕기 위해 학생들이 성취한 것들을 축하하고, 배움의 과정을 끊임없이 외부에 공개하는 학교라면 어떨까?


망고T 프로젝트 다섯 번째 글에서는 코로나19 이후의 학교를 디자인할 때 참고점이 될만한 삼정중학교(교장 이상대)를 소개한다. 학생들의 배움을 공개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고 있는 학교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삼정중은 400명이 채 되지 않는, 수도권에서 보자면 작은 학교에 속한다. 서울형 혁신학교 9년 차인 삼정중은 ‘전교생이 독서, 토론, 자치회 활동을 하는 학교’로도 알려져 있다.



교육 활동 순간순간이 배움의 증거

삼정중 2학년 복도가 대자보로 가득했다. 흡사 조선시대 유림들이 왕에게 올리는 상소문 같다. 지난해 12월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나고 수업 시간에 건의문 쓰기를 실습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각자 전지 한 장씩을 주고, 대자보 쓰는 공부를 한 것. 1교시가 끝나고 ‘교장선생님께’로 시작하는 대자보가 몇 장 붙더니, 나중에 화장실을 고쳐 달라, 사물함을 바꿔 달라 등의 건의 대자보가 식당, 복도 등 학교 전체에 100여 장이 붙은 것이다. 새로 부임한 행정실장이  일이 터졌나싶어 교장실로 달려왔을 정도였다


대자보 수업을 계기로 학교장은 학생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학생들의 불편사항사물함컴퓨터 교체  서둘러 시설을 전면 정비해 나갔다후문 공원계단 조성이나 학교앞 신호등 설치  지차체가 해결해야  안건에 대해서는 학생회에서 관련 부서를 꾸려 교복입은 시민으로서 직접 구청쪽과 교섭에 나서는 참정권 행사 계획 세웠다사정이 생겨 구청과 직접 교섭권을 행사하지는 못했으나실현가능성 등을 점검하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 되었다.

삼정중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도서관

이날 삼정중 친구들은 대자보를 통해 나온 의견을 수렴하고, 자치회 차원의 의견 수렴 기구를 만들었다. 이 기구는 학교 혹은 지자체 차원에서의 교섭 건을 담당했다. 그 해 겨울방학, 시의회에서 예산을 받아 사물함과 컴퓨터를 전면 교체하고, 학교 앞 신호등 설치나 후문으로 이어지는 계단 조성 건같이 구청 쪽과 협의해야 할 안건에 대해서는 구청 교섭단을 꾸려 ‘교복 입은 시민’으로서 직접 참정권을 발휘하기도 했다. 각 단체의 역할을 알아보고, 실현 가능성 및 예산 규모를 점검하는 등 준비 과정 자체가 배움이 됐다.


수업 활동이 구체적인 변화를 실행하는 행동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에는 교실 안에서 수업 활동으로 끝내지 않고 모두가 볼 수 있게 복도에 공개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선생님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평가를 넘어서 서로의 활동에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나아갔고 행동으로 연결됐다.



배움을 확장하는 비법, 외부에 공개하기

삼정중 교육 활동 기저에는 ‘독서’가 있다. 독서 담당 교사 1명은 전 학년 국어시간 중 한 시간을 따로 떼어 독서교육으로 편성하고 운영한다. 즉, 전교생이 일주일에 한 시간은 책을 읽어야만 한다. 학생들은 권장도서 8권을 읽어야 하고 1학기 말 전교생 투표를 통해 가장 좋았던 책 1권을 최종 선정한다. 그리고 9월에는 해당 책을 쓴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삼정문학상> 행사를 연다. 이 과정에서 작가 섭외는 교사가 책임지지만 이외에 포스터 제작, 연극 공연, 행사 진행 등 필요한 모든 작업은 학생들이 직접 진행한다.


삼정중을 방문한 작가들은 별 기대 없이 왔다가 자신의 책을 꼼꼼히 읽고 질문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곤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실제 작가 앞에서 공유하고 질문하니 배움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삼정문학상>은 이상대 교장이 부임하기 전부터 시작된 삼정만의 행사로 독서담당인 이민수 선생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외부 전문가를 초청하는 토크쇼로 독서 활동의 청중이 생기니 삼정중의 독서 열기는 점차 무르익어 갔다. 지난해에는 자율 상설 독서 동아리만 39개, 149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전체 학생 중 1/3명은 독서동아리 부원인 셈이다. 삼정중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책을 읽으며, 문해력을 길렀고 방과 후 또는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책 내용에 대해 토론하면서 의사소통 능력과 문제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웠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문해력, 의사소통 능력, 문제해결력을 갖추게 된 것은 집단지성의 힘을 발현해 학교 곳곳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기회의 장을 열게 했다.


삼정중은 평가를 하더라도 단순히 평가에 그치지 않는다체육수업 같은 경우 학년별로 대나무춤리듬줄넘기커버댄스 등과 같은 모둠별 주제수행평가를 하는데 연습 기간을 거쳐 발표회 형식으로 평가를 진행한다예를 들면 점심 시간을 이용해 진행되는 1학년 대나무춤 평가발표회를 2, 3학년 선배들이 같이 지켜보며 응원하고, 2학년 발표회는 1, 3학년이 관람 응원하는 식이다덕분에 평가발표회가 진행되는 내내 학교 운동장에서는 환호성 속에서 작은 축제마당이 연출된다교실 수업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친구가  발표축제를 통해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하고평상시 수업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지적받던 학급이 뜨거운 단합력으로 새롭게 거듭나기도 한다평가조차도 성장의  과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배움 현장과 과정을 공개하고 그것을 개개인 성장으로 이어가는 배움 공개가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배움을 공개하면 일어나는 일들

예산안도 우리가, 예산집행도 우리가 직접

삼정중 학생들의 경우, 이미 1학년 때부터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또래 모둠 학습에 익숙하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란스럽다.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것에도 능숙해서 강의식 수업보다는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드러내 놓고 선호한다. 교사가 수업 진행을 위해 ‘너는 학생이니 교사 말을 들어야지’, ‘조용히 해라’ 등의 말을 할 경우 ‘우리가 왜 그래야 되는지 토론해 보자’고 교무실까지 쫓아온다. 누군가는 버르장머리 없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교사들은 내심 ‘우리 학교 학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독서토론으로 다져진 역량은 삼정중의 학생 자치회 문화로 꽃을 피웠다. 축제나 구기 대회 등 학생들이 참여하는 행사는 알아서 척척! 신문도 만들고, 신입생 환영회도 학생들이 기획하고 개최한다. 전교생 400명 중 1/3 이상이 자발적으로 학생자치회 분과 활동을 한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차기 학생회장에 출마하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지난해에는 후보자 검증에 들인 시간만 1박 2일이 걸렸다. 회장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뿐 아니라 또래들과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일 년간 그 활동들을 책임감 있게 소화할 수 있는지, 참신한 기획력과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는지, 참여 의지는 얼마나 높은지 등을 확인받아야만 한다.


이 글의 서두에 소개한 대자보 건으로 학교가 들썩거릴 즈음 학교 인근에 위치한 국제청소년센터에서는 일 년간 배움 활동에 대한 평가회가 열렸다. 일반적으로 평가회, 공유회 등은 학교 차원에서 교사들이 준비하기 마련인데, 삼정중은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한다. 학교가 아닌 학교 밖 공간을 대여하는 것도, 학생들의 교육 활동을 점검하고 피드백을 준비하는 전 과정을 기획하는 것도 학생 자치회 몫이다.

 

 

학교 구성원 모두는 1/N의 책임과 권한이 있다


교육은 매뉴얼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교사가 돼라!

강연회에서 삼정중 이상대 교장이 한 말이다. 배움을 학교 구성원, 그리고 외부와도 공개하다 보니 삼정중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학교’, ‘전교 1등도 행복하지만 전교 꼴찌도 행복한 학교’가 되어버렸다. 이런 학교를 만들어 가는데 숨은 공신이 있다. 2016년 9월 1일 부임한 이상대 교장과 교직원들이다. 삼정중이 혁신학교 5년 차일 때 부임한 이상대 교장은 ‘학교의 작은 사안이라도 모두가 둘러앉아 해결하기’문화를 만들어 갔다. 30년 이상 국어 교과목을 가르치던 평교사로 내부형 교장공모제도*(이하 교사 교장제)를 통해 선출된 이 교장은 항상 교장과 교직원은 수평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학교의 민주적 문화가 실현 된다고 믿는다. 


*공모교장제도란?

2007년부터 시행된 ‘교장공모제’는 교장 자격증 소지   여부나 연공서열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나 역량을 평가해 선발함으로써 공교육의 혁신을 이뤄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다. 교장 자격증이 있어야만   임명제 교장이 되는 기존 교장 제도는 그것대로 두고 다른 길을 하나 더 더한 제도다. 초빙형은 교장 자격증   소지자만 공모에 응할 수 있고, 내부형은 교육경력 15년 이상 교원이면 누구든   공모에 응할 수 있다. 개방형이란 것도 있지만, 적용 범위가 자율학교(혁신학교 포함)의 15%만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통로가 좁다. 공모교장제도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다. 교장 자격증이 없는 사람을 교장직에 선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아직은 지배적이다. 그래서 평교사 출신   내부형 공모제 교장이 임명제 교장보다 직무 수행력이 높다는 효과성을 입증한 논문과 보고서를 몇 편을 소개한다.

① ‘교장공모제의 공모 교장 직무 수행에 대한 효과 분석’ 보고서, 2009년 충북대 나민주 교수 연구 논문

② ‘교장공모제 성과 분석 및 세부 시행 모형 개선 연구 보고서’, 2010년 한국교육개발원 발행   

③‘교장 공모제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 2012년 중앙대 김이경 교수   연구 논문


일등도, 꼴찌도 행복한 학교 삼정중

이 교장은 교사의 성장이 교육공동체 모두의 성장과 혁신을 견인한다고 믿는다. 그는 교사들에게 ‘민주를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학생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불평등 구조를 용서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한다. 이는 이 교장의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그 역시 위와 같은 신념으로 30여 년간 평교사로 지내 왔기 때문이다.


이 교장은 정의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엄격한 교육관을 지켜나가기 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행복하게 교육 활동을 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수업 시수가 18시간이 넘는 교과에 대해서는 강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강사 채용 예비비를 책정한다거나 카페형 교무실 같은 근무 여건 개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울타리 역할도 확실하게 한다. 또한,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며 교사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호흡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학부모들도 주기적으로 만난다. 학부모회 임원과 정례적 모임 외에도 현재 학부모 독서동아리 3팀 (26명)을 직접 이끈다. 각각 월 1회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에 얹어 짬짬이 학교 활동도 안내하고, 교사들의 근황을 소개한다. 다양한 채널로 학부모와 소통하며 교육공동체 동지로 자리 잡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1/N의 책임과 권한이 있으므로 교장은 그것을 지원하고 조력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정중은 올해 3기 혁신학교로 새롭게 탄생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삼정중만의 학교문화를 바탕으로 학생들 삶의 근육을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일상을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 목표점에 다다르기 위해 천천히 나가려고 한다. 변화를 일궈 나가는데 지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 아니 이미 코앞에 닥친 지금의 변곡점에 삼정중이 어떤 학교로 변신해 갈지 기대해 본다.  


교장 자격증 없다. 다른 분들에 비해 행정 경험도 일천하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뒹군 30년 경력밖에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믿는 게 있다.  교육은 서류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얼굴을 맞대면하는 순간 시작된다는 거다. 교실에 집중하겠다. 교장이 교실의 감각을 잃는 순간 교육은 사라지고 행정만 남게 된다. 같이 꿈꾸고 같이 뛰자.

-  삼정중 공모교장 3차 면접, 교육공동체 앞에서 한 브리핑 내용 중 일부

 


경진커의 탐방 노트


너희가 와야

학교도 봄

학교를 가야

우리도 봄

-  <봄>, 영월 섬강초 교사의 페이스북 글 발췌


3월 꽃샘추위와 함께 한 해를 시작했던 우리였지만 코로나19로 등교 개학이 5월까지 미뤄진 상황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교육자들의   마음을 담았으리라!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담임 선생님, 가끔 땡땡이치며 놀던 학교 후미진 어딘가, 반찬투정을 하면서도 싹싹 비울 급식 등 일상을 다시 채울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배움터가 필요하다. 지식을 습득하고 학업을 이루기 위한 곳을 넘어 또래를 만나고   함께 자라는 곳, 살아가는 방법을 연마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삶을 배우는 곳,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배움,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과정을 즐기며 배움을 공개하는데 주저함 없는 아이들,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 과정을 서로 공유하는 학교. 삼정중학교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보면 어떨까.


글. 유쓰망고 전략기획디렉터 허경진

편집. 씨프로그램 러닝펀드 매니저 문숙희


유쓰망고가 만난 교사 커뮤니티 더 살펴보기

https://brunch.co.kr/@ontherecord/211

https://brunch.co.kr/@ontherecord/208

https://brunch.co.kr/@ontherecord/203


러닝랩 펠로우십(Learning Lab Fellowship)이란

씨프로그램은 지난 2년간 러닝랩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배움에 대한 여러 시도를 지켜봐 왔습니다. 동시에 의미 있는 실험이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과 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수많은 만남과 고민 끝에 러닝랩 펠로우십을 시작합니다. 러닝랩 펠로우십은 다음 세대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배움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팀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유쓰망고는 학습자 중심 배움을 실천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는 교사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전국 단위 확장을 목표로 하는 망고T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러닝랩 펠로우십을 통해 전국 곳곳에서 학습자 중심 배움을 실천하는 교사 모임을 발굴하고 각 모임을 연결 지어 학습자 중심 배움의 환경을 확장하는 데에 기반을 닦을 예정입니다. 그 과정의 첫 기록으로 유쓰망고가 만난 교사 모임 중 ‘디퍼 러닝(Deeper Leanring)’ 6가지 요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사 모임을 2019년 11월부터 6개월간 매달 한편씩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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