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by 고휘연

이렇게 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제 다시금 새로운 자로서 인간들에게 지혜를 나누어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과정은, 독자 여러분께서 이제껏 보았듯이 결코 녹록지 않았던,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차라투스트라가 목격한 세상은 다양한 상들(相, Vorstellungen)에 의한 헛된 욕망들이 군무(軍務)를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밤이 오면 그 모든 상들은 잠들고 그 모든 욕망들도 함께 잠든다. 그리하여 존재의 본연이 드러난다. 잠든 얼굴들을 평화가 어루만진다. 그 어떤 악의도 있을 수 없게 되며 그들은 모두 무한히 긍정된다.

독자 여러분들이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보았던 것은 다름 아닌 이성(理性)이 존재에 드리우는 그림자였다. 이성은 분별하고 구분하며 질서 짓는 힘을 지닌다. 그러나 생각해 보건대, 인간이 분별하고 구별하고 질서 지을 수 없었다면 인간 삶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우리네 “시장”이란 분별하고 구별하고 질서 지으며 기능하지 않던가. “문명”은 또 어떠한가. “삶”이란 또 어떠한가.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렇게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생명이요, 피가 울컥이는 심장박동이고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지 않던가. 우리는 또한 철새들의 이동이고 주춧돌의 응축이고 별의 운행이 아니던가.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의 이성(理性)에 바로 이러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뛰지 않는 심장은 죽은 심장이요, 흐르지 않는 피는 시체의 피일뿐이다. 심장은 뛰어야만 심장이고 피는 흐를 수 있을 때 살아있는 몸을 구성한다. 모든 존재는 그 운동에 거처한다. 또한 모든 존재는 장(場)으로서 존재한다. 바로 이 자리에서 마치 바다와 같이 수많은 봉우리가 한순간에 솟구쳤다 꺼진다.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금방이라도 한꺼번에 튀어나올 듯이 일렁인다.

모든 존재가 바로 이러함을 알 때, 이성(理性)은 새로워질 수 있다. 인간이 분별, 구분, 질서지음을 넘어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자유로운 이성(理性)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인간들에게 주고자 했던 선물은 이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 아름다운 방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말로 주어질 수는 없으며 오직 차라투스트라의 삶을 통해, 그가 걸어가는 발자취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 사람들은 이미 상에 붙잡혀 있으며 끊임없이 욕망을 생산하기 때문이며 이를 통하여 다시 사물을 보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반드시 왜곡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삶은 과연 “시장”과 다르다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똑같지 않은가? 그들이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진리를 들을 수 없지 않던가? 나는 이 물음을 독자 여러분께 넘기고자 한다. 부디 각각의 독특하고 빛나는 이성으로 이 물음을 계속해서 거듭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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