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건 아니야.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라.”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원래의 세계로부터, 원래의 나로부터 연결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미운 정이 들어버린 회사를 그만두었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만나왔던 연인과 헤어졌으며 가족들과 친구들을 뒤로하고 머나먼 만리타국까지 떠나왔다.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천천히 단절되어 갔다. 알래스카부터 아르헨티나 최남단까지 2만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종주한 김훈호 여행가는 단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국내여행도 좋아하지만 해외여행을 더 좋아합니다. 바로 단절 때문이죠. 단절이란 우리로 하여금 깊게 고민하고 사유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이 말에 많은 공감이 되어서였는지 론세스바예스로 향하는 첫날은 외국인 순례자들과 함께 걷게 되었다. 실은 한국인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싶었다. 정든 고향의 냄새가 풍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의지하게 될 것만 같았다. 순례길 위에서만큼은 원래 알던 세상과 단절되고 싶었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길 원했다. 체코에서 온 마르케타 역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인터넷으로부터 단절되고 싶어(I want to be disconnected by internet).”
Disconnect. 결국 단절이었다. 수많은 연결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연결감의 과다로 인해 원치 않는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 기술이라는 문명의 혜택을 누려 왔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빠르고 쉽게 연결되는 그런 번잡스러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도 단절 속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 있기를 바랐다.
마르케타 외에 네 명의 외국인 순례자들이 더 있었다. 그들은 각각 벨기에,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행이 되어주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례자가 한 명 있었다. 민머리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콧구멍 사이를 뚫은 피어싱, 목과 양팔에 커다란 문신을 한 채 붉은 배낭을 메고 걷는 벨기에 순례자 니코였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반짝이는 피어싱이나 화려한 문신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맨발이었다. 등산화는 고사하고 샌들도 신지 않은 채 돌멩이 가득한 피레네 산맥을 맨발로 걷고 있다니 재야의 도인처럼 보일 정도로 그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가 가장 기억에 남은 이유는 그의 범상치 않은 외모와 맨발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피레네에서 하산할 때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엄숙해 보이던 구름들이 결국 비를 뿌렸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비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나와 함께 걷던 유럽 순례자 일행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느긋한 편이었고 나도 한 느긋하는 성격이라 그들의 여유가 꽤나 편안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점점 순례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여섯 명은 론세스바예스에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야 꼴찌로 도착하고 말았다. 여유의 대가는 혹독했다. 론세스바예스에 있는 단 하나뿐인 알베르게는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순례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아예 남아 있는 침대가 없었다. 편히 쉴 생각에 마음을 반쯤 놓은 채로 도착했는데 빗속을 뚫고 더 가야 하다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알베르게 로비는 비에 젖은 채 잘 곳을 찾지 못한 순례자들과 일찍이 도착해 말끔하게 씻은 가벼운 차림의 순례자들로 어수선했다. 그 사이로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생장피에드포르의 같은 알베르게에서 잤던 한국 분이었다. 그는 적당히 단정해 보이는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삼십 대 중후반의 남자였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세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겨버리고 나니 한국인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알베르게 전쟁’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알베르게에 잘 곳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몰아친 것이다. 아직 모두가 적응하지 못한 순례 첫날이어서 걱정은 더 크게 느껴졌다. 이후 초반 며칠 간의 순례에서 나는 뿔테 안경의 남자를 종종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선봉장처럼 보였다. 좋은 알베르게를 일찍 차지해야 하는 경쟁에서 항상 선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알베르게 문제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하루에 20~30킬로미터라는 긴 거리를 걸어가야 했고 스페인의 대낮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미친 듯이 더웠던 터라 많은 순례자들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이 현상은 비단 한국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빨리빨리’가 미덕인 나라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유독 한국인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역으로 그에게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빠르게 걷는지. 여기까지 와서 왜 그렇게 빨리 걸어야 하는지. 한국에서는 많은 삶들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곤 했다. 빠르고, 급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비슷한 모습을 순례길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많은 이들이 순례길을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처럼 걷고 있었다. 그들의 빠른 걸음을 볼 때마다 생기는 조바심으로 체할 듯 가슴 한 구석이 조여왔다. 경쟁하기 위해서 이 길에 올랐는가? 빠른 걸음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가?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라 했지 않던가?
결국 첫날은 유럽 순례자 다섯 명과 론세스바예스에서 3킬로미터를 더 걸어가 오리츠라는 작은 마을에서 묵게 되었다. 마트에서 산 허접한 빵과 햄, 치즈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알베르게인지 가정집인지 모를 주택의 2층 거실에 모여있을 때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팀 수퍼슬로우Team Superslow’라는 자조섞인 이름을 붙여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여대생 미리암과 마르케타가 니코에게 물었다. “우리 내일은 몇 시에 출발해? 가이드 북을 보니까 내일은 주비리까지 20킬로미터 정도 걸어야 돼. 낮에는 너무 더울텐데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을 들은 니코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간이나 가이드 북에는 신경 꺼. 너가 가고 싶으면 가고, 멈추고 싶으면 멈춰. 이건 숙제가 아니야. (Don’t care about the time or guide book. If you want to go, just go. If you want to stop, just stop. This is not homework).”
그의 눈과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가이드북은 말 그대로 가이드북일 뿐이었다. 그것이 내 순례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내 순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내 순례길의 첫 단추는 이렇게 꿰어졌다. 순례길은 숙제가 아니야.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