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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단 Sep 03. 2023

품 : 편안함과 불편함 사이

09






“걷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어떤 역할을 할 필요도 없고, 어떤 지위에 있지도 않으며, 어떤 인물조차 아니다. 걷는 사람은 단지 길 위에 널려 있는 조약돌의 뾰족한 끝 부분과 키 큰 풀의 가벼운 스침, 바람의 서늘함을 느끼는 몸뚱이일 뿐이다.”

-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순례길은 만남과 헤어짐이 헤픈 곳이다. 순례자들은 서로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같이 걷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고 옆 침대에서 잠을 자기도 했지만 금세 자유로운 영혼처럼 자신만의 길을 찾아갔다. 우연한 곳에서 다시 만나기라도 하면 온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채로 반가워했다. 첫날 결성된 팀 수퍼슬로우도 사흘도 못 되어 자연스럽게 서로의 길로 떠나게 되었다. 순례길 초반부터 유난스럽게 외국인 순례자들과 함께 걷다 보니 점점 괜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그럴 마음조차 없었지만 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만 같은 부담감, 유럽인들의 문화 속에 홀로 남은 아시아인으로서 간혹 느껴지던 이질감, 계속 영어만 써야 하는 불편함 같은 감정들이 누적되어 갔다. 깊은 무의식은 한국인들의 품을 그리워하게 만든 것일까. 그들과 헤어진 이후 조금씩 조금씩 한국 사람들과의 시간이 늘어갔다. 특히 밥 앞에서는 조국을 향한 단절의 욕구가 모래성처럼 무너지곤 했다.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들의 국적 통계를 본 적 있다. 유럽의 길답게 유럽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비슷한 서구권 국가들이었다. 그 뒤로 등장하는 낯익은 국가 대한민국. 어쩌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이 길에 오르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걷다 보면 정말로 생각보다 많은 한국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다. 동양인으로 보이면 십중팔구 우리나라 사람이었고 간혹 보이는 다른 국적의 아시아인들은 일본이나 대만에서 온 순례자들이었다(전세계 어딜 가나 있다는 중국인들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저녁이면 알베르게의 주방에서는 반가운 냄새가 새어 나와 코를 찌르곤 했다. 아침이나 점심은 보통 빵으로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알베르게에 있는 한국인 순례자들 덕분에 고추장찌개, 닭백숙, 3분 카레 같은 익숙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큰 행운이었다.


만찬이다


밥은 함께 먹을 때 더 맛있는 법. 알베르게에 모인 한국 순례자들은 다 같이 저녁밥을 해 먹으며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몇몇 한국인들과 친해지는 것은 당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파리에서 바욘으로 가는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마흔 살을 앞둔 박영민과 그와 같은 민박집에서 묵었다는 스물두 살 공대생 류성민, 팜플로나에서 처음 만난 또 다른 대학생 김선화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저녁이면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는 함께 밥을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계속해서 걸었다. 시간은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흘렀고 어느덧 200킬로미터를 향해가고 있었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순례길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일주일 넘게 걸어오면서 물집이 생기지 않음에 감사했지만 나헤라로 향하던 날 불안불안했던 오른쪽 새끼발가락에 옥수수 한 알 크기의 물집이 잡혔다. 몸뚱이 전체에 비하면 작디작은 물집 하나가 온몸을 뒤흔들었다. 몸의 균형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걸음은 점점 팔자걸음으로 바뀌었고 무릎에도 무리가 오는 듯했다. ‘산을 오를 때 힘든 이유는 높은 산 그 자체가 아니라 신발 안의 작은 돌멩이 때문이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더 이상 걷기에는 무리가 되겠다 싶어 잠시 쉴 작정으로 벤토사라는 작은 마을의 한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팀 수퍼 슬로우 멤버였던 미리암과 마키 그리고 다른 백인 순례자들이 몇 명 있었다. 짧은 인사를 한 뒤 물집을 처치하려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이 다가왔다. 미리암은 소독약을 계속 부어주면서 동시에 흐르지 않도록 내 발가락 밑에 휴지를 대어주기까지 했고 다른 영국인 순례자는 ‘콤피드’라는 유럽 순례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밴드를 건네주었다. 혹시 모르니 하나 더 쓰라며 여분까지 챙겨주었다. 다른 순례자들도 관심을 보이며 괜찮을 거라는 위로를 전해주었다. 대여섯 명의 외국인들이 작디작은 내 물집을 둘러싸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민망한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뭐라고 내 새끼발가락에 난 이 완두콩 만한 물집이 뭐라고. 그들이 먼저 떠난 자리에 민망함은 이내 고마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외국인들의 품 안이었지만 국적과 인종을 떠나 순례자라는 이름의 교집합 속에 과분한 따뜻함이 있었다. 고마웠다.


생명수와 같았던 레몬 콜라


레몬 한 조각이 담긴 시원한 콜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건 앞뒤로 누구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나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순례길에 오른 이후로 시야에서 모든 사람이 사라진 적은 처음이다. 공기가 무음의 소음을 내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소음들과 발과 땅의 마찰음만이 나와 함께했다. 이런 길을 상상해 왔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서 한없이 고요하게 걷는 길을. 프랑스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상징하는 길이기에 그만큼 사람들의 북적거림을 피할 수 없었고 그 시끌벅적함 속에서 홀로 걷기란 쉽지 않았다. 홀로 걷는다는 것은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더 선명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내 고독해져 버린 길 위를 고작 10분이나 걸었을까. 이기적이게도 방금 전에 느꼈던 유럽인들의 따뜻함은 금세 잊어버리고 고국의 그리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마저도 여기서 만난다면 참 반가울 것 같았다.





     

그날 밤, 한국을 향한 그리움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람들로 인해 씁쓸함과 안타까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여행지에서 한국인들의 품 안에 있는 것은 무조건 편안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속된 말로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불편함은 한 층 강해졌는데 그 불편함은 대부분 연배가 있으신 분들로부터 나타났다. 한 학교의 교장 선생님, 한 회사의 임원, 한 협회의 장 같은 분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보다는 주로 하고 싶은 말을 하셨다. 한국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랑을 하거나, 본인의 말이 정답인 듯 설교를 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거나, 본인만 재미있는 유머를 던졌다. 심지어 다 같이 음식을 준비할 때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분들도 있었다. 모든 분들이 다 그렇진 않았지만 그런 광경은 자주 나타났다. 함께 있는 젊은 순례자들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특별한 존재’ 썸바디somebody가 아닌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가 된다고" 했다. 자신이 누구였든, 어떤 일을 했든, 어떻게 살았든 여행지에서는 그저 노바디에 불과한 것이다. 교장이든, 임원이든, 장이든 순례길 위에서는 모두 한 명의 순례자일 뿐이다. 가끔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시거나,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거나, 솔선수범하신 분들을 만날 때면 사람 대 사람으로서 편안함이 느껴졌고 오히려 그분들이 더 어른스럽고 멋있어 보였다.


그분들이 인생 선배로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또한 종종 그분들의 말에서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 자리를 지배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주제의 이야기로 왜 귀한 순례길의 밤을 낭비해야 한단 말인가. 그분들도 자신이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테다. 이 길 위에 올랐다는 것은 자신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고 남은 여생을 더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함이지 않을까. 불현듯 지난 회사에서의 수직적인 문화가 떠오르면서 그 당시 읽었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라는 책의 한 문장이 기억 속에서 튀어나왔다.


“다양성이란 나의 외부에 다른 사람이 있고 다른 시각이 있어서 그것들이 각자 공존하며, 동시에 내가 변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문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내가 변해야 한다’는 마지막 부분이었다. 세상에서 아무리 다양한 모습을 보고 느낀다 한들 자신이 변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온갖 대륙에서 건너온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다. 그중에서도 더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들과 함께 걷는 순례자, 부모님을 모시고 온 순례자,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 순례자, 2인 자전거를 타는 커플 순례자, 얼굴에 화상을 입어 햇빛을 피하기 위해 배낭에 우산을 꼽고 걷는 순례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으며 걷는 순례자 같은 사람들이다. 이토록 수많은 삶의 단면들을 볼 수 있는 곳에서까지, 자신을 돌아보러 온다는 기나긴 길 위에서까지,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순례길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밤하늘에 깔린 별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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