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페라다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중세 왕국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거대한 성, 근교 대저택들이 풍기는 여유로움, 산과 강이 어우러진 평온한 도시. 아침 9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몸을 이끌고 나온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유중호, 류성민, 김선화는 아침 일찍 떠났고 박영민과 김민서 그리고 내가 남아 있었다(우리는 농담 삼아 스스로를 놈팽이라 부르곤 했다). 전날의 흐렸던 잿빛 날씨는 구름 섞인 파란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폰페라다의 분위기를 느끼며 도시를 빠져나와 한참을 맑은 날씨 아래에서 걸었다. 작은 동네를 한 두 개쯤 지났을까. 새로운 양갈래길이 등장한 지점에서 박영민은 아스팔트 길로 직진을, 나와 김민서는 숲길로 우회를 하게 되면서 다시 둘이 걷게 되었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영학을 전공한 나에게 그녀는 접하기 어려운 분야의 사람이었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무용을 전공했거나, 필라테스 선생님으로 일하는 사람을 사적으로 알고 지내본 적은 없었으니까. 긴 팔을 휘저으며 넓은 보폭으로 걷는 그녀가 어째서 그렇게 빠르게 걸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 덕분에 이제 천천히 걷고 멈추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여유롭게 옮기는 걸음들이 좋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동안 잔잔한 감정의 연못에 희미한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우리의 대화는 한 걸음씩 깊어져 갔다. 숲길을 무대로 한 대화의 주인공은 ‘사랑’이었다. 나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에 전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했기에 둘의 이야기는 멈출 틈이 없었다. 헤어진 사람들끼리 하는 대화가 흔히 그렇듯 우리는 왜 그 관계가 실패로 끝이 났는지, 최악의 에피소드는 무엇이었는지, 사랑했던 서로가 왜 점점 별로인 사람들이 되어갔는지 같은 부질없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골동품처럼 변해버린 서로의 연애담을 주고받는 것은 재밌기 짝이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를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택한 숲길은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즐거운 대화가 늘 그렇듯 어느새 다음 마을이었다.
폰페라다 성
산티아고 도착까지는 약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이제는 절반은커녕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의 수많은 염려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까미노의 일상에는 더없이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간 몇 개의 작은 물집과 무릎에 생겼던 땀띠, 욱신거리던 뒤쪽 어깻죽지를 제외하면 감사하게도 큰 문제없이 걸어왔다. 운 좋게도 그 악명 높은 베드버그에도 한 번 물리지 않았다. 수많은 순례자의 드르렁대는 코골이와 시큰한 땀 냄새, 난간조차 없어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던 이층 침대가 매일같이 이어졌지만 더없이 깊은 잠을 잤다. 커피 향과 빵 내음 가득한 아침,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과 일몰, 아름다운 성당과 조용한 거리, 땀으로 젖어가는 한낮의 걸음, 에너지를 채워주는 레몬 콜라, 조악하고도 풍성한 저녁, 서늘해진 밤을 마무리하는 맥주와 와인, 그 모든 것 아래에서 든든한 토양이 되어준 사람들. 이런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끔씩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녀가 대뜸 말을 꺼냈다.
“이런 여행은 처음이야.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더 걷고 싶어.”
까미노에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까미노 블루(산티아고 순례길을 그리워하며 우울감을 느끼는 것)’가 벌써 시작된 걸까. 그녀에게 나의 다음 계획을 말해주었다. “포르투갈에도 600킬로미터 정도 되는 까미노가 있어. 대서양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대.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나면 포르투갈 길을 거꾸로 걸어서 리스본까지 갈 거야. 상상해 봐.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을.” 그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은 밝아졌다가 이내 어두워졌다.
그녀의 사진들
다음 날 아침은 조용했다. 그녀마저 먼저 떠나고 없었다. 늘 그래왔듯 혼자 걷는 시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이었지만 그날따라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중간에 들린 한 카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온 71세 할아버지 순례자인 존을 다시 만나 두 시간 정도를 함께 걸었다. 벗겨진 머리에 흰 수염을 가진 존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에너지 넘치는 순례자였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쓴 《100년의 고독》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거나, “Look! look!”을 연발하며 건물의 모양이나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스페인의 역사부터 트럼프나 오바마에 대한 견해, 우리나라와 북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까지 잘 알고 있는 매력적인 노인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고 산길은 거대한 고가도로까지 곁들여져 독특한 풍경을 뽐냈지만 마음 한 켠은 계속해서 허공에 붕 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첫날의 피레네가 겹쳐지던 곳, 산이 넘실대는 오 세브레이로에 도착했다(피레네 다음으로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은 산길 구간이다). 동시에 프랑스길의 마지막 광역자치주인 갈리시아 지방에 접어들었다. 눈이 맑아지는 깨끗한 풍경 덕에 많은 순례자들이 하루를 보내고 가는 것 같았다. 다만 앞서가고 있던 여섯갈래길 멤버들은 알베르게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조금 더 이동해 리냐레스라는 아주 작은 동네의 알베르게에 머무르기로 했다고 전해주었다.
오 세브레이로의 풍광을 눈에 담으며 산길을 30분쯤 걸었을까. 나는 뛰기 시작했다. 별안간 뛰어간 이유는 그녀가 처음으로, 나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언제쯤 오는지 물으며 해 떨어지기 전에 빨리 오라는 연락이었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가 나에게 닿았을 때 하루 종일 허했던 마음이 순간 채워지는 듯했다. 10킬로그램이 넘어가는 배낭을 메고 꽤 험한 산길을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었다. 힘이 났다. 해 지기 전의 황금빛 햇살을 받아서인지 그날따라 유독 성가시던 날벌레 떼들도 숲 속의 작은 정령들처럼 보였다.
조그마한 동네치고 깔끔하게 지어진 새하얀 알베르게는 신축 호텔처럼 쾌적했다. 산능성이를 바라볼 수 있는 고즈넉한 뒷마당이 마음에 들었다. 고추장찌개로 저녁 시간을 따뜻하게 채운 여섯갈래길은 뒷마당에 나와 우의를 깔아놓고 일렬로 누웠다. 완전히 어두컴컴해진 밤하늘 아래, 우리 모두는 다 같이 우주를 걸었다. 지천에 깔린 별들을 한없이 감상할 수 있는 건 순례자들에게 주어진 근사한 특권 중 하나였다. 머지않아 쌀쌀해진 밤공기가 찾아오자 부지런한 동료들은 숙소로 들어갔고 또 놈팽이 셋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박영민의 제안으로 각자 까미노에 대한 시를 한 편 지어보자는 다소 오그라드는 상황을 맞이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별기운 때문인지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서로 까미노에서의 벅차올랐던 여러 감정들을 하나둘 꺼내놓았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를 읊어보았다.
에펠탑의 야경이 가장 예쁜 줄 알았는데
까미노의 별빛은 그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파리의 화려함보다 까미노의 순수함이
나는 더 좋은 것 같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나는 영원히 볼 수 없을 거야
고마워
나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 주어서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얼레벌레 유치한 시를 끝냈을 때는 박영민이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눈치챈 걸까.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의식한 시라는 걸, 그녀를 까미노에 비유한 시라는 걸. 그녀는 옆에서 말없이 웃고 있었다. 길 잃은 감정이 어느 틈바구니로 비죽이 나와버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