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 (花死)

봄은 죽었다

by 온우






그 애를 처음 본 건 겨울이었다.

잔뜩 웅크려져 하얗게 말라 가던 그때, 너는 아무렇지 않게 내 삶에 들어와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꽃봉오리보다 앞서 내게 두고 갔다.


햇살은 늘 네 목덜미에 앉아 있었고, 바람은 자꾸만 네 이름을 부른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네가 웃으면 내 계절이 들썩였다. 나는 왜 네 눈동자에서 봄을 보았을까.


따뜻하다 못해 홧홧했던 네 손이 내게 닿았던 날엔 손끝이 덴 것 같았다. 물을 틀고, 비비고, 그 손을 그렇게 오래 헹궈봤는데도 계속 네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네가 내게 너무 오래 남을까 봐 두려웠을 뿐인데,

그게 너에게서 나를 지우는 일이었을까.


네가 떠난 건 꽃이 가장 화사하던 날이었다.

그해 나의 봄은 누구보다 빠르게 피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졌다.


내가 가진 계절 하나가 조용히 너를 따라 걸어 나갔다.


벚꽃이 흩날리는 날엔 꽃잎보다 먼저 너를 피했고,

봄바람이 불면 네가 오는 것 같아서 자꾸 문을 열어 보곤 했다. 어느 날부터 벚꽃이 눈물처럼 보여서, 나는 계절을 더 이상 마주 보지 않게 되었다. 벚꽃은 가볍게 날리지만 나는 그 아래에서 너무 무거워졌다.


그날 이후 봄은 나를 피해서 온다.

향이 없는 꽃이 피고 온기 없는 햇빛이 내린다.

그 애와 함께였던 계절이 그대로 멈춰 있던 탓인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네가 걸었던 거리에서 햇빛의 방향을 가늠하고, 네가 고개를 돌렸던 곳마다 계절의 표정을 다시 읽는다.


피지도 지지도 못한 채 그때의 봄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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