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젖지 않기 위해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신발 끝에 닿는 빗방울조차 경계하며 마른땅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곤 하지요. 빗소리에 목소리가 묻히고 옷깃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순간에도 내 곁에서 함께 젖어가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낀 적이 있으려나요? 그 축축한 공기 속에서 느껴지던 온기를 저는 낭만이라 부릅니다.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세상은 선명함을 잃고 먼발치에 고인 웅덩이마다 부서진 가로등 불빛이 일렁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이 닿을 만큼 가까이 서서, 젖은 머리카락이 두 뺨에 달라붙고 차가운 빗방울이 등을 타고 흘러내려도 우산을 펴는 대신 서로의 젖은 손을 조금 더 꽉 붙잡아 봅니다.
우리는 가끔 기꺼이 젖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