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때문에 학교를 옮기고 싶어
프랑스학교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그냥 다른 학교 보낼까?"
"영어만 하는 학교 보낼까?"
엄마의 안절부절못한 마음을 아이도 눈치챘는지,
"엄마 나 그냥 영어만 하는 학교 다니고 싶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숙제이다.
숙제 때문에 학교를 옮기고 싶다니, 도대체 얼마나 숙제가 많으면 그런 생각을 할까 싶겠지만 숙제의 양은 솔직히 많지 않다. 다른 학교 아이들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프렌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프렌치를 안다면 금방 끝날 숙제를 한 시간씩 붙들고 있다. 아이가 아는 단어는 쉽게 하겠지만 아직 모르는 단어가 현저하게 많다. 난 저녁마다 책상에 앉아서 아이의 숙제 노트를 펼치고 구글 번역기를 돌린다. 가끔은 이놈의 번역기가 엉뚱하게 번역을 해서 짜증지수가 확 오르기도 한다. 아이가 옆에서 고분고분 숙제에 집중했으면 좋겠지만 몸은 배배 꼬이고, 장난을 치고 급기야 들어 눕는다. 이제 엄마의 잔소리가 기관총처럼 쏟아질 시간이다.
"다다다 다다다 다다~~"
매일 반복되는 숙제의 바닷속에서 헐떡이며 수영을 하고 있다. 그러다 지쳐 손과 발을 멈추면 꼬르륵 바닷속 깊이 침몰한다.
"우리 학교 옮길까???"
아이의 프렌치 숙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낱말이나 파닉스 또는 문장 쓰기 연습하기. 그 숙제로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하기 때문에 꼭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림과 맡는 낱말 찾기. 이것은 아이가 단어를 안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인데, 기억을 잘 못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짧은 스토리를 읽고 문제 풀기.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문장 하나도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워 번역기를 돌리고 돌린다. 번역이 좀 이상하면 네이버 파파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도 시원찮으면 또 다른 번역기를 이용한다. 그래서 내 핸드폰에는 번역기가 무려 네 개가 깔려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숙제부터 끝내고 놀았으면 좋으련만, 아이는 "돼지저금통" 또는 도티와 인사를 나눈다. 아이는 그들의 열렬한 팬이다. 하루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몸살이 난다. 약 1시간 동안 유투버들과 교제를 하고, 그들의 영상에 좋아요를 수십 번 누르고, 구독까지 하고 나면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아이가 엄마의 유튜브 계정으로 좋아요와 구독을 누르는 바람에 매번 그들의 추천 영상이 나에게 뜬다. 계속 취소를 하고 삭제를 해도 좀비처럼 다시 살아난다.)
이제 숙제를 좀 해야 할 타이밍이지만 배가 고파온다. 저녁 먹을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후식까지 다 먹은 후, 동생과 한바탕 싸우고 엄마한테 한 소리 듣고 난 다음이 바로, 숙제의 시간이다.
아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엄마 옆에 앉아 연필을 잡는다. 그런데 연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필깎이를 찾아 연필을 깎는다. 드디어 연필을 잡고 쓰기를 한다. a를 써야 하는데 자꾸 c를 쓰고 있다. 지우개를 찾아 c를 지우고 다시 쓰는데 앗차! 또 c를 써버렸다.
"에이 참, 연필아 왜 자꾸 c를 쓰는 거니? a를 써야 한다고."
아이의 모습에 드디어 엄마는 팩트 폭격을 날린다.
"다른 학교 가면 쉬울 것 같아? 아니야. ○○이는 숙제가 너무 많아서 학교 갔다 와서 저녁까지 숙제를 한대. 다른 아이들은 집에 선생님까지 와서 과외를 해. 그런데 넌 집에서 하루 종일 놀잖아. 숙제 하나 조금 하는 거 가지고 그렇게 울상이면 어떻게 해? 한국 가면 쉬울 것 같아? 한국에 가는 순간 너도 학원 다녀야 돼. 네가 해야 되는 숙제를 엄마가 도와주는데 좀 열심히 해주면 안 돼? 자꾸 그러면 엄마도 숙제하라는 소리 아예 안 할 거야. 네가 알아서 해. 선생님한테 혼나던 말던 엄만 신경 안 쓸 거야. 넌 네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지? 너보다 힘든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 아이들은 널 보면 부럽다고 생각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다다다 다다다~"
엄마의 기관총 잔소리에 아이는 결국 항복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숙제를 시작한다.
엄마도 아빠고 프렌치를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도와주는데 한계가 있다. 물론 아이도 힘들어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숙제의 강도가 점점 심화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다음 해에는 두 아이 모두 초등학생인데, 과연 두 아이의 숙제를 다 봐줄 수 있을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프랑스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접한 불어는 매우 생소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불어 선생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어를 잘하지 못했다. 하긴, 중학교 때부터 배운 영어도 잘하지 못했고 한문도 잘하지 못했으니, 한국말 이외의 외국어를 습득하는 머리는 없었던 것 같다.
고작 기억나는 말은 "주 마 뻴르 쏘냐" 또는 "주 땜므"가 전부이다.
심지어 고3 때는 불어 시간에 국영수 수업을 했다. 불어는 수능시험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웃긴 것은 내신을 위해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은 봐야 했다. 배운 것도 하나 없는 불어 시험을 봐야 했다. 그 불어 선생님은 시험기간이 되면 5장 분량의 시험지를 줬다. 거기엔 문제와 답이 나와있었는데, 우리는 단어의 뜻도 모른 체 문제와 답만 외워 시험을 치렀다.
20년도 전의 일이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디 가서 불어가 제2외국어였다고 말하기도 매우 창피하다.
"나 지안이 숙제 도와주기가 너무 어려워."
"그러게. 안 그래도 그 생각했어. 프랑스 사람인 나도 어려운데, 넌 어떻게 아이 숙제를 도와주고 있니?"
"난 구글 번역기 사용하고 있는데 너무 어러워."
"우리도 쉽지 않아. 모르는 것은 언제든지 물어봐."
"그래, 고마워."
프랑스 사람들도 숙제가 쉽지 않다는 말에 조금 위안이 되었다.
어느 날 하교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붙들고 말을 했다.
"숙제가 어려운 거 알고 있어요. 지안이 책에 한글로 하나하나 찾아서 써놓았던데 고마워요. 숙제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요. 천천히 하세요. 점점 어려워질 거예요. 하지만 계속 반복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숙제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한국 아이가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만약 아이들을 프랑스 학교에 보내기 전에 이런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알았다면 아마 보내지 못했을 것 같다.
아이의 숙제는 곧 엄마 숙제이다. 아이가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내가 꼭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날마다 여러 번역기를 돌려가며 숙제를 하고, 서툰 문장을 써 내려간다.
프랑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그 순간부터 도전이 시작되었다. 순간순간 좌절의 경험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결승선까지 완주해보고 싶다. 비록 달팽이가 꿈틀대며 기어가는 속도이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숙제를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오늘도 무지한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