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Mar 08. 2020

당신의 품사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방학 동안 외출도 제대로 못하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노는 아이들은 사이좋게 놀다가도 싸우고, 싸우다가도 잘 논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기까지 하루 일과는 항상 변함이 없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내일도 아마 똑같은 일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우리의 일과가 조금 삐그덕거렸다. 격리된 것은 아니지만 격리된 듯한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다른 분들도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심심해를 백만 번 말하고 유튜브 하나만 더를 외치는 아이들과 이제 그만, 안돼를 외치는 엄마.

급기야 어제는 두 녀석이 장난을 치다 서로 싸움이 되었고 큰 아이가 둘째 아이를 때리고 밀어버리기까지 했다. 둘째는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화가 치밀었다  역시나 스트레스가 가득이었던 나는 매를 들었고 게임용 핸드폰은 쓰레기통에 버리(는 척) 기 까지 하고야 말았다.

순간 평온했던 집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밤이 되도록 화가 풀리지 않은 나는 책도 읽어주지 않고 자버렸다.



나는 아이들에게 부사 같은 엄마이다. 아이들의 행동을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나쁜 행동을 하면 화를 내고 안돼를 외친다. 외출할 땐 “빨리빨리”라는 부사를 쓰고 아이들이 실수를 하면 한숨의 부사로 표현한다. 밥을 먹을 땐 “골고루” 부사를 남발하고 두 녀석이 싸울 땐 “당장”부사를 사용한다.


반대로 남편은 형용사 같은 사람이다. 엄마의 눈치를 보다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는 아이를 “예쁜”손길로 쓰다듬는다.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는 “너그러운”마음으로 허락한다. 남편은 아이들의 고유명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날마다 형용사 같은 아빠가 퇴근하기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아는 것 같다. 자신들을 잘 꾸며주는 사람은 형용사 같은 아빠라는 것을.


하지만 그게 억울하진 않다.

하나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형용사와 명사, 부사와 동사가 필요하듯.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형용사 같은 아빠와 명사 같은 각 개인, 부사 같은 엄마와 동사 같은 아이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명사이기도 하고 동사이기도 한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기도 하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개구쟁이 기도 하다.




난 고유명사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마음이 변함없는 사람.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몇 명 있는데 10년 만에 만났어도 어제 헤어지고 다시 만난 것처럼 수다를 떨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부정 부사 같은 사람이다.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한 편의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품사가 적절히 사용되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부분이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하고만 살 수 없고 내가 싫어도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야 이 사회가 굴러가고 적절히 균형이 이루어질 테니까.


혼자서 품사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부사에 “ㄴ”이 붙으면 형용사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빨리 가 빠른으로, 귀엽게 가 귀여운으로.

이렇게 단 하나의 받침으로 품사가 변하듯 사람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바로 “ㄴ”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말이다.


당신은 어떤 품사의 사람인가?


영어공부할 때는 문법을 생각하고 품사를 생각하며 공부하지만 우리말을 할 때는 전혀 문법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듯, 당신의 성품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회에서 어떤 품사의 사람으로 살아갈지는 바로 나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나는 부사 같은 엄마이다.

늦잠 자고 있는 아이들을 어서 일어나라고, 빨리빨리 아침을 먹으라고 흔들어 깨우러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2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면허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