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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07. 2020

사소한 것에 시선이 멈출 때 _ W2

선을 긋다, 마음을 잇다.


매번 똑같은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요즘처럼 여행은커녕 근처 마트에 가는 것조차 큰 마음먹고 가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삶이 단조롭게 느껴진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묵상을 하고, sns에 들어가 발자취를 남기고, 아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깨워 온라인 수업 준비를 한다. 매일 똑같은 책상에 앉아 어제와 다른 그림을 그리고, 똑같은 노트북을 켜서 어제와는 다른 글을 쓰려 머리를 굴린다.

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고, 저녁 준비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아이들의 책을 함께 읽으며 키득 거리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아이들과 살을 비비며 잠을 청한다.

단조로운 일상은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고,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감사한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



가끔 너무나 사소해서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없으면 너무나 아쉬운 것들이 있다.

리모컨 건전지가 다 되어서 갈아야 할 때, 매번 보이지 않는 AAA 건전지가 그렇고,

사촌 형아가 물려준 바지의 허리가 헐렁할 때, 분명히 서랍에 있었던 것 같은 검정 고무줄이 그렇다.

남편의 흰색 와이셔츠에 얼룩이 묻었을 때, 이미 다 써버린 락스가 그렇기도 하고,

인도의 겨울이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냐며 버려버린 겨울 스웨터가 그렇다.


이런 사소한 것에 시선이 멈추면 매번 아쉬움을 느낀다. 그때 그걸 샀어야 했는데, 그때 그걸 잘 뒀어야 했는데, 그때 그걸 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런 현상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때 그 말은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 관계를 끊었어야 했는데, 그때 연락을 멈추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후회는 내 삶을 뒤흔들진 않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주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 남편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다. 사소한 행동이나 말에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 습관은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더 심화되었다.

이렇다 보니, 사소한 것이 더 이상 사소하게 보이지 않게 되고, 자꾸만 기억하게 되었다.



W2 패턴은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무늬이다. 하지만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패턴이기도 하다.


W2 패턴 그리기


겨울에 입었던 스웨터, 주방에서 쓰는 바구니,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사다 준 꽃 바구니, 친구가 인도 여행길에 사다 준 캐시미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w2

너무나 사소하지만, 이 패턴의 이름이 W2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사소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소한 물건에 시선이 멈추게 된다.




“저녁마다 우리 가족만의 의식을 할까 해.”

어느 날 갑자기, 단조로운 일상에 남편이 돌멩이를 하나 던졌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이들은 눈알을 굴렸다.


“돌아가면서 포옹을 해주는 거야. 인정의 말이나 감사의 말도 하면서.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까 서로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같아. 포옹을 해주면서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자는 거지.”


우리는 어색하게 일어나 돌아가며 포옹을 해주었다. (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었다.)


아주아주 사소해서 함부로 할 수도 있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쑥스럽지만 따뜻한 포옹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밤마다 포옹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소한 것에 시선을 멈추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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