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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16. 2020

마흔둘의 나를 마음껏 기대한다.

선을 긋다, 마음을 잇다.

IMF가 터졌던 1998년 겨울, 불운의 수험생이었던 나와 친구는 수능을 끝낸 후 컴퓨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컴퓨터와 노트북이 있지만, 그때의 우리는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학생들이었다. 대학에 가면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기초적인 컴퓨터 지식을 배우려고 등록을 한 것이었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나는 수포자였고 컴퓨터 용어 문외한이었다. 처음으로 간 컴퓨터 학원에서 우리는 아주아주 간단한 한글과 컴퓨터를 배웠고, 한컴타자연습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인터넷에 접속을 해보았고, 처음으로 네띠앙에 가입을 했다.

내  진짜 이름이 아닌, 인터넷상의 ID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고민을 했다. 선량이라는 이름처럼 착해빠진 이름 말고 왠지 있어 보이는 이름을 만들고 싶었다. 생애 처음으로 만든 내 아이디는 “dandelion”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 나는 그때의 아이디처럼 살고 있다. 민들레 홀씨처럼 말이다.




2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6년 정도를 살고 인도 뭄바이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방글라데시나 인도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나 역시 인도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나라, 여성에게는 더욱 위험한 나라. 겁을 잔뜩 집어먹고 뭄바이로 향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큰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월세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던지, 교통이 어마어마하게 막히는 지역이었다. 차가 없었던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에서 그나마 싸고 살만한 집을 구했다. 걸어서 학교에 가는 건 정말 좋았지만, 한국인은커녕, 외국인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이 회사에 가면 나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았다. 내 삶에서 가장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처음, 방글라데시에 가게 되었을 때도, 뭄바이에 가게 되었을 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한 마음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게 된 것일까? 나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일까?

민들레 홀씨처럼



가만히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삶의 모양들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세모인지, 네모인지, 동그라미인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뭄바이에 살았던 시간은 고작 1년이다. 그 1년 동안 참 많은 경험들을 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투고를 했고, 계약을 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으로 돈도 벌어 보았고, 인스타 그램을 시작했다.

가장 외로울 때 그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도전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여전히 여러 가지 일에 도전을 해보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의 나이가 마흔둘이었다. 나는 마흔둘의 엄마가 몹시 힘들어 보였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논과 밭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엄마.

엄마의 등은 항상 그늘져 보였고, 웃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마흔둘의 나이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새로운 일을 해보기 힘든 나이, 더 이상 삶에 즐거움도 없는 나이.



마흔둘을  고작 3개월을 앞두고, 태블릿을 장만했다.

작년 가을, 한국에 갔을 때 남편이 그림용 태블릿을 하나 사주겠다는 걸 말렸었다. 전업주부라는 아이덴티티는 사람을 좀 움츠러들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음식도 가족들이 먹고 싶은 걸 해야 하고, 옷도 내 옷이 아닌 아이들 옷을 먼저 사게 된다. 커피도 커피숍 대신 집에서 맥심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 궁상맞은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세상의 편견에 난 자유롭지 못했고 철저하게 그 안에서 웅크리고 살았다.


남편이 태블릿을 사준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부담”이었다. 돈도 못 버는 내가, 집에만 있는 내가 무슨 태블릿이란 말인가. 그림 전문가도 아니고,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릴 줄도 모르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물건이 자꾸만 갖고 싶어 졌다. 다른 사람들이 태블릿이나 아이패드로 그리는 그림이 멋있어 보였고, 그게 있으면 나도 뭔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남편의 찬조를 받아 태블릿을 장만했다.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웠던 그 마음으로 태블릿을 만지작 거린다. 이런저런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그림을 그려본다.

내가 처음으로 만든 포털 사이트의 아이디가 “Dandelion”이었다면, 내가 처음으로 그린 디지털 드로잉은 민들레 홀씨이다.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하고 살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민들레 홀씨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날아다니려나보다.


이런 삶이 고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디로 가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나 역시 그렇게 날아가서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마흔둘의 나를 마음껏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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