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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27. 2020

4. 영원한 행복, 에키네시아

진짜 행복이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


따뜻한 봄날, 밭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옆에서 일하던 엄마에게 말했다.

“아야, 나 좀 어지럽다.”

“오메, 어무이. 퍼뜩 인나시소. 병원 가 봐야것네요. 언능 갑시다.”


여든이 넘었던 할머니는 읍내에 있는 가장  병원에 입원해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이때껏 노환으로 거동이 조금 불편할 , 고혈압이나 당뇨도 없었다. 무릎이 아파 병원에 다녔지만,  질병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할머니는 뇌졸중 판정을 받았고, 병원에 입원했다.

할머니와 통화할 , 할머니의 목소리는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약간 발음이 어눌한 정도였으니까.


할머니가 병원에 머물러 있었던  때, 

시골 집에 불이 났다.

안방에서 시작된 전기 합선 때문이었다. 안방이 홀라당 타버렸고, 작은  절반을 남겨놓고 겨우 불길이 잡혔다. 다행히도 집엔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의 상태는 갑자기 나빠졌고, 타버린 사진처럼   돌아가셨다. 


엄마와 산 세월보다 할머니와 산 세월이 더 길었다. 내 사춘기 시절, 내 대학 시절, 내가 취업을 해 첫 월급을 탔을 때도 내 옆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 장례식장에 가서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그때 내 뱃속에는 첫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낸 , 엄마는 불에 타버린  마당에서 새벽 하늘을 올려다보며 삶의 허망함을 깨달았다. 


아빠는 불로 타버린 집터를 놔두고 마을 입구에 새로운 집을 지었다.

엄마는 마당 주위에 꽃과 나무를 잔뜩 심으셨다. 그중엔 이름은 모르지만, 왠지 익숙한 꽃이 있었다.

 



굳이 이름을 알지 못해도 괜찮은 꽃들이 있다. 들꽃이라고 불리는 꽃들이다. 그렇다고 꽃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에키네시아  @ goodness



엄마가 심은  꽃의 이름은 에키네시아이다. 들꽃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고급스러운 이름이 있었다니. 다년생 꽃으로 6~8월에 만개한다.

 꽃은 약으로도 사용되는데, 항바이러스제로 가장 널리 사용된다고 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감기나 초기 호흡기 질환의 상비약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에키네시아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너무 거창한 꽃말에 웃음이 났다. 영원한 행복이라니. 어느 사이비 종교의 비전 같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살지만, 진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까?


공부를 잘하면, 대학에 가면, 취직을 하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우린 행복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온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행복이란 어떤 조건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요즘은 그런 거창한 행복 말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약간의 돈을 내고 배우는 취미, 조금의 돈으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책 쓰기 모임, 성취감…….

이런 것들이 유행하는 이유는 잡히지 않는 큰 행복을 위해 오늘을 힘들게 살아 내야 하는 것 대신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영원한 행복 @ goodness



에키네시아의 꽃말은 그런 의미에서 거창한 뜻이 아닌  같다.


주위에서 쉽게   있는 ,

엄마 마당에 피어있는 ,

이름은 모르지만 어쩐지 눈에 익은 .

그게 영원한 행복일까?



오늘은 큰아이의 생일이다. 이상하게 이맘때가 되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에게 내 아이를 보여드리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난 너무나도 당연하게 할머니가 내 아이를 만나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이제 아이의 생일이 되면, 할머니와 함께 이 꽃을 기억하고 싶다.

 할머니는 저 하늘나라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에 이르렀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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