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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7. 2021

3. 셋, 사랑

마흔, 둘의 단어


이 나이에 사랑을 논한다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드라마의 폐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친구 중에 싱글인 친구가 여럿 있다. 가끔 그 친구의 일상이 궁금해지다가도 선뜻 물어보지 못한다.

나처럼 하루 대부분을 주부의 삶으로 살진 않을 것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고, 개인적 취향으로 가득할 일상을 간섭하게 되는 꼴이 싫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호기심을 넘어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주부인 나는 싱글인 그녀의 일상에, 싱글인 그녀는 주부인 나의 삶에 환상을 갖고 있을지도.

그들의 싱글 라이프가 부럽지 않다면 거짓이고, 그렇다고 대놓고 부러움을 티 낼 수도 없다.

너는 너, 나는 나의 삶을 살다가 잘 지내? 무심한 듯 식상한 안부 인사 또는 부산스러운 나애미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으로 궁금증을 대신한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녀들의 삶에 낭만적인 사랑이 있는지다. 이것도 드라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사는 여성이 한참이나 어린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부모의 반대라는 걸림돌로 휘청하지만, 그조차 뛰어넘는 사랑을 하고 결국 결혼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어찌나 낭만적인지.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스토리다.

나에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몰입하게 되고, 남자 주인공에게 가슴이 설렌다.



 가정이 있는 여자가  첫사랑 오빠를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된다던지, 한 가정의 가장이 회사 직원과 눈이 맞아 가정을 팽개치고 사랑을 좇아 나간다든지……. 사회적 질타를 극복하고 이루어지는 사랑을 해야 찐 사랑이라도 되는 것 마냥 미화시켜 놓은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심리는 뭘까?

드라마는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라던데,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는 이런 류의 사랑이 서슴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올해로 결혼 10년 차가 되었다. 20년, 30년도 넘게 산 부부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 부모님은 무려 50년을 넘게 사셨는데….

 명함도 내밀지 못할 10년 차지만, 기간이 중요한가? 삶의 농도가 중요하지…

누구도 납득 못 할 농을 던져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는 마흔 둘이었다. 언니 셋은 도시에서 학교에 다녔고, 나와 남동생만 시골에 남아 엄마 옆을 지켰다.


열한 살의 나는 엄마가 가여웠다. 온종일 들에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저녁밥을 했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늦은 오후가 되면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를 했다. 그런 일이라도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는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얼굴엔 웃음도 미소도 없었다. 엄마의 얼굴과 팔은 볕에 그을러 있었고, 손톱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나는 엄마의 삶이 애달팠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저 아침에 눈 뜨면 일을 하고,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져도 일을 하고, 밤이 깊어야만 쉴 수 있는 삶처럼 보였다.  


처마 밑 그늘에 앉아서 마늘을 까거나 콩을 까는 날에 엄마는 어김없이 꾸벅꾸벅 졸았다. 하지만 절대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담벼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5분을 졸다가 번쩍 눈을 떴다.

난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고달프게 사는지, 왜 사랑도 주지 않는 아빠 옆에서 사는지, 좋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남편이 뭐가 좋아서 몸도 마음도 힘겹게 사는지.


그게 나와 언니들과 동생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내 부모의 모습과는 다르게 드라마에서의 사랑은 언제나 결혼으로 끝났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여전히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걸 안다.  

결혼 없는 사랑이 존재하듯, 사랑 없는 결혼도 존재한다는 것도.


사랑 없는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순 없다. 결혼을 유지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고, 본인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일 뿐. 더 이상 이혼이 손가락질받을 일도 아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엄마에게 감사하다.

황소 같은 아빠 옆에서 50년 넘게 견뎌주었기에 나와 언니들, 그리고 동생이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의 과정들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결혼이라는 과정을 이어가는 동안, 부부의 사랑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식상한 면이 있다. 그 식상함이 생활 깊숙이 침투한다. 예전 같았으면 감동했을 행동들이 지금은 부부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당연한 사랑은 없다는 것을, 이해받고 싶은 만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사랑도 결혼도 끝내지 않으려면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며 산다.

이게 부부의 사랑이라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친구야, 너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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