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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13. 2024

러브레터의 진실 1

[단편소설] 결말은 자유

자정이 다 돼 가는데 이 인간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열 시 즈음에 곧 온다는 사람이 소식이 없다. 부장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술을 워낙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걸 내가 다 아는데 무슨 부장님 핑계를 대고 있는지 원.

나도 맥주 한잔하고 싶다. 모유 수유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병나발을 불었을 건데. 내가 왜 완모를 하겠다고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첫째 아이 때는 처음이라 젖이 잘 나오지 않았다. 배가 고파 울고 있는 아이에게 무작정 젖만 물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 먹였더니, 웬걸 이노무시키가 내 젖을 빨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했다.

둘째를 낳았을 때는 준비를 철저히 했다. 애 낳은 첫날부터 가슴 마사지를 하고, 돼지 뼈를 사다 10시간 넘게 끓여서 먹고, 젖에 좋다는 건 몽땅 사다 먹었다. 하지만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기고 말았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는데 기름진 것을 잔뜩 먹어서 그렇다나. 할 수 없이 두드러기약을 먹어야 했고, 젖을 물릴 수 없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젖을 물리려고 하니, 아이는 진짜 젖꼭지의 감각을 잊어버리고 고무젖꼭지 맛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모유를 못 먹여서 그런지 둘 다 비리비리한 것 같고, 감기도 잘 걸리는 것 같고 그게 또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원래 셋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이놈의 양반 때문에 덜컥 셋째를 임신하고야 말았다. 그래 봤자 남들은 이제 막 첫 아이를 낳을 나이긴 하다.



셋째를 낳으러 분만실에 누워 있을 때, 대부분의 산모가 나와 비슷한 연배였다. 하지만 난 셋째, 그들은 첫째를 낳는 중이었다.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날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첫째 낳는 산모들은 배가 아프다고 난리였다. 난 이미 경험해 본 터라 아직 때가 안 됐음을 알았고, 아파도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첫째 둘째 덕분에 넓어진 골반으로 힘 한번 주니 아기가 퐁 나왔다.

내가 이 나이에 셋째를 낳게 된 건 모두 그 자식 때문이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게 다 그 우체부 아저씨 때문이다.




원래 웅이랑 나는 어려서부터 같이 놀던 사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놀았으니, 참 징그럽기도 하다. 매일같이 만나서 총싸움, 숨바꼭질하던 사이였다. 초등학교에 가서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축구를 하고, 야구도 하면서 남자아이들처럼 놀러 다녔다.


중학교에 올라간 후부터 함께 놀기가 좀 쑥스러워졌다. 여자아이들 중에서는 웅이가 멋있다고 하는 애들도 생겨났다. 같은 동네 사는 나에게 웅이 좀 소개해 달라는 여자애들이 있었다. 그게 좀 이해되지 않았다. 저렇게 지저분한 녀석이 뭐가 멋있다고? 저 얼굴이 잘생겼다고? 눈이 삐었냐?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웅이의 턱에서 거무스름한 수염을 본 날이었다. 그걸 본 순간 이상하게 내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왜 이러지? 심장은 왜 또 그렇게 빨리 뛰는지….

모르는 척 지나쳐가는데 웅이가 뒤애서 날 불렀다.

“야~ 김순이~”

나는 웅이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쟤 목소리가 원래 저랬나? 원래 염소새끼 울음소리 같았는데…. 그런데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웅이는 더 이상 초딩이 아니었다. 나보다 작던 녀석이 어느새 나보다 더 커서 날 내려다보았다.


걔가 변하는 동안 나도 조금씩 초딩 티를 벗고 있긴 했다. 이마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웅이에게 내 이마의 여드름을 들킬까 싶어 앞머리를 내려 이마를 가렸다.  가슴에 멍울이 생긴 후 크게 변화가 없던 가슴도 조금씩 커져서 브래지어를 꼭 해야만 했다. 그런 변화들이 불편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어른이 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반 여자애 한 명이 웅이에게 러브레터를 쓴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지들이 뭔데 러브레터를 써? 웅이는 나랑 제일 친한데….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친하다고 현재형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이미 우리 사이는 과거형이 된 것만 같았다.


게네들이 웅이에게 진짜 러브레터를 쓸까? 웅이가 그걸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걔 성격에 그 편지를 받아 줄 것 같진 않은데… 걔가 그런 애가 아닌데…. 설마 저러다 진짜 사귀기라도 하면 어쩌지?

고민하다 밤잠을 설쳤다.


예쁜 척하는 걔한테 웅이를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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