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
착한 사람만 보면 그렇게 괴롭히고 싶더라. 나랑 똑같이 만들어 버리고 싶은가 봐. 망가뜨리고 싶나 봐.
우리 둘 다 불쌍해서 그래. 너도 너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나도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니까 서로 그걸 아는 거야.
중국 시절 쓴 글이다.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착한 사람은 해맑은 사람이고 노력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 언제나 열심히 해서 자신이 무언가를 이룩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 결국 착한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짓는 가짜웃음. 어딘가 어그러진 그 웃음은 우울함을 들킬까 걱정되는 것의 성질이다. 그리고 노력했다가 실패했을 때의 비참함과 결과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치졸한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세상의 걱정은 무엇도 없다는 듯이 웃는다. 실패할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노력하고 안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노력의 결과에 대해 승복하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더욱 노력한다.
대학 시절에도 친한 친구 중에 그런 아이가 있었다. 항상 웃고 항상 해맑고 항상 예쁘게 말하던 친구. 그 아이는 나에게도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다. 가정환경이 좋고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됬지만 나에겐 더 우리집에 대한 미움을 커지게 만들기도 했다. 연극을 하던 시절에는 내가 항상 열등감을 느끼는 한 사람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 한살 많은 여성이었는데, 첫 공연부터 주연을 맡았다. 사진 전공이라던 그는 처음 해보는 연극에 항상 힘들어 하면서도 새벽까지 남아 연습을 하고 남에게 도움을 요청해가며 공연을 마쳤다. 그때까진 그저 아무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해맑은 미소는 알았지만 그런 사람들에 대한 내성은 생기고 있을 때 쯤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무엇이든 이뤄냈다. 자신의 전공인 사진으로 재능을 뽐내기도 했고, 노래도, 춤도, 연기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다 잘해내었다. 그 뒤엔 당연히 그의 노력이 무수히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그를 그저 질투했다. 움직임 수업때도 춤이 전공인 나에게 있어 열등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그리고 그때의 애인이 그를 참 많이 칭찬하곤 했다. 그것이 동경이었는지 관심이었는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질투가 났다.
여전히 그의 행보는 소셜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다. 볼 때마다 부러우면서도 가질 수 없는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와 나를 좋아했던, 혹은 내가 좋아하던 다른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말이 올라왔을 때, 나는 그를 언팔로잉 했다. 내가 만약 그 남자와 만났으면 우리는 얼마 못 가 헤어졌을 것이고, 그때의 애인과 그가 만났다면 결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그가 가진 것들이 없었으므로.
지금 나의 주변엔 대학 시절 친구가 여전히 그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 미소와 예쁜 말들은 그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그를 망가뜨리고 싶진 않다. 그저 옆에서 그를 바라보며 그를 좋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