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쯤 일어나서 회사에 나오는 방식을 루틴으로 만들고 있다. 7시 전에 도착해서 씻고 전화외국어 수업을 준비한다. 수업이 끝나면 2-30분 정도 아침일기를 쓴다. 작은 노트 한권을 어제 다 채웠다. 손글씨를 쓰다가 이제부터는 컴퓨터로 일기를 쓴다. 노트에 쓴 글은 고치지 않고 간다. 컴퓨터로 글을 쓰다보면 끊임없이 앞뒤를 오간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완성도 있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
어제 오후는 방황하다가 하루종일 걸었다. 덕분에 아침에는 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미네타 산호세 공항까지 갔다가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걸으면서 고미숙 선생의 강의를 쭉 들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커다란 의미와 목표, 가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더욱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제는 걸으면서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미주한국일보에 보낼 다음 칼럼은 <더 단순하게, 더 정교하게>가 될 것 같다. 맥도날드에서 떠올린 단순함의 미학을 주제로 쓸 것이다.
덜어내야 한다.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 짐을 스스로 안고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틀즈는 <Hey Jude>에서 말했다.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 세상 전부를 내 어깨에 짊어지고 가지 말자. 가볍게 숨쉬자.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살자. 진리는 어떤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내 안에 진리가 있다. 진리를 추구하자. 진리는 지평선처럼 존재한다. 점근선처럼 가야 하는 게 내 삶이다.
확신을 갖고 뚜벅뚜벅 걸어가자. 나는 미국생활을 제대로 마무리할 것이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다. 미주한국일보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글의 수준이 이만큼 높은 사람도 없다. 나는 이미 만 38세의 나이에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이란에서 <이란표류기>를 냈고, 한국에서 <일상이 산티아고>를 냈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에서 홀로서기>를 낼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왜 쓰는가 묻는다면 나는 나를 치유하기 위해 쓴다고 대답할 것이다. 살기 위해 쓴다고 말할 것이다. 죽음을 떠올리는 나는 삶을 위해 쓴다. 쓰고 또 쓰자.
고미숙은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썼다. 나도 끊임없이 읽고 쓰고 걷고 말하는 삶을 지속하겠다.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다. 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사람이 인생을 알차게 사는 것이다. 다행히 어려움 속에서도 루틴을 만들었다. 회사에 와서 씻고 전화외국어를 하고 아침일기를 쓰는 행위가 나의 아침 일과다. 나의 찬란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이 시공간을 인식하자. 인위적으로 호흡하며 안정을 모색할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있다. 잡생각과 잡정보는 걸러나가야 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소화하려다 보면 탈이 난다. 지식과 지성으로 해결하려기 보다는 지혜를 쌓는 방향으로 삶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일기는 누구를 보여주려는 글이 아니므로 제한된 시간 안에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털어놓는 방식으로 쓰려고 한다. 나의 생각을 글로 풀어놓고 정리하며 방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유를 모른 채 태어난 이상 한껏 살다가면 된다. 그것 뿐이다. 그게 인생의 참된 과정일지 모른다. 의미를 찾으려는 직접적 노력에만 골몰하기보다는 일상을 충실히 영위하면서 하루하루를 자신있게 숨쉬고 싶다. 나는 나의 가치추구를 계속하겠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 앞으로 하루 한쪽은 쓰면서 아침을 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