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사람의 마음

by 김삶

오후에 일기를 쓴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느라 사무실에 늦게 도착했다.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가길 잘했다. 행동적 항우울제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뭔가 해야 한다. 서성거릴 시간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잘 하라는 대선배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서성거릴 시간이 없다. 곧 있으면 1년 반이다. 3개월만 있으면 1년 반이다. 발령을 받은 시점이 2020년 11월 말이니 1년 4개월이 지났다. 사실상 1년 반이다. 절반이 지났다. 나는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응석받이가 아니다. 어른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참된 의미의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마음을 다잡겠다.


대선배님께 메일을 보냈던 게 10월 말이다. 벌써 5개월 전이다. 나는 5개월 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직도 서성이고 있지 않나?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러다가 나와 가족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내가 내린 답에 대한 확신을 갖자. 나는 대선배님이 말씀하신 대로 미국 생활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성대고 망설이는 나를 바꿔야 한다. 대선배님이 보내주신 메일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도망가려는 나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 업무를 장악해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낼 것이다.


계속 고민만 하기에는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문득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차피 한국에 갈 거라면 어차피 죽음을 맞이할 거라면 그 시간을 앞당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공간에서 나만의 혁명을 계속하겠다. 그것이 바로 실리콘밸리의 정신일 것이다. 나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을 탑재하고 간다. 비행기를 타면서 마음에 담았던 박경리의 다짐을 되새긴다.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죽음과 삶이 반복된다. 다시 아침이 오고 있다. (촬영: 김삶)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뜻은 앞으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고 나는 그 시간을 아껴써야 한다는 뜻이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에 천착하지 말자. 매일 잠을 잔다는 것은 매일 죽는다는 뜻이다. 나는 기존의 썩어빠진 내 존재를 죽이고 매일 새로 태어난다. 하루하루 죽음과 삶이 반복된다.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을 때 죽음에서 머무르려고 하지 말자. 깨어나자. 깨어나서 활동을 하자. 의미를 만들자. 인간은 의미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했다. Man is a meaning-making animal. 나는 오늘 하루 어떤 의미를 만들 것인가? 나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의미를 찾아내자.


일을 장악해야 한다. 서성거리는 나를 죽여야 한다. 멸사봉공이라고 했다. 나는 어제의 나를 죽이겠다. 나는 오늘의 나로 새로 태어났다. 이것이 일신우일신이다. 다른 말로 데이원 정신이다. 지금이 내 생의 시작이다.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놓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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