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쓴다. 토요일에 뭔가를 쓴 적이 꽤 오래 됐다. 2월 초 <걸어서 실리콘밸리>를 마치고 토요일 새벽에 스타벅스에서 원고를 썼다. 오래 가지 못했다. 계속 밀고 나가는 힘이 필요하다. 꾸준히 아침일기를 쓰려고 한다. 좋아하는 후배와 통화를 앞두고 시간이 좀 비었다. 4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노트북을 열었다. 커피를 내리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새로운 영혼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어제 저녁 하루키의 <먼 북소리> 서문과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정신적 탈바꿈을 준비하는 30대 후반 작가의 결기를 느꼈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와 할 수 없다고 자신을 끌어내리는 또다른 자아의 대결을 엿볼 수 있었다. 하루키는 그걸 자기 머릿속을 맴도는 벌 두 마리로 표현했다. 벌에 이름도 붙였다. 조르지오와 카를로라고 했던가. 나도 내 가슴 속에 자리한 응어리에 이름을 붙이겠다. 그의 이름은 프리즈다. 얼어서 꿈쩍도 않는 프리즈를 녹일 것이다. 따뜻한 바람을 끊임없이 불어넣겠다. 조르지오와 카를로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듯이 내 안의 프리즈도 곧 녹아내릴 것이다.
시간을 정해놓고 쓰는 일기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문장연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목적은 아니다. 나는 자꾸만 달아나고 도망가려는 내 의식과 존재를 잡아두기 위해 쓴다. 어제 읽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시는 내게 큰 자극을 줬다. 커다란 목표를 향해 거대한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방법밖에 없다. 머뭇거리지 말자.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출가를 원한다. 속세를 벗어나는 출가가 아니라 세속에서 내가 원하는 경지에 다다르고 싶다. 그게 내가 말하는 성공이다. 나는 혁신가가 되고 싶다. 아니 나는 혁신가로 살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여기에서 시작하면 된다. 지금부터 여기에서 혁신가로 살면 된다. 일상의 혁명은 내 주변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 몸과 마음을 닦는 일에서 혁신과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 방법대로 해나가는 과정에서 프리즈와 계속 대결하게 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유혹과 생각은 떨쳐버리자. 사색으로 포장한 공상은 그만두고 싶다. 살아있음을 감사히 받아들이자. 그리고 의미를 만들자. 의미를 만드는 동물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잊지 말자. 수레바퀴 자체는 거룩하지 않지만 수레바퀴 만드는 일은 거룩하게 수행할 수 있다. 나의 지난 서성거림과 머뭇거림을 포장하거나 비하하지 말자. 나는 충분히 나의 색깔을 드러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나의 도전과 좌절에는 일관성이 있다. 그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시도였다.
일기를 마무리하는 와중에 둘째가 깼다. 어제 둘째가 처음으로 학교에서 친구를 만들었다. 대견한 일이다. 아버지로서 역할을 하려고 한다. 나는 아버지다. 아이가 아니다. 나는 어른이다. 어른으로서 어른에 걸맞은 정신과 자세를 갖추겠다. 나가서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