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아침일기를 쓴다. 틈틈이 무언가를 써오고 있지만 이른 아침에 컴퓨터 앞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은 이틀째다. 일어나서 걷고 생각하고 쓴다. 사무실 창밖으로는 경전철이 지나간다.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고 다음 문장을 떠올린다. 하루키가 말했듯이 나도 내 존재의 평형을 확인하는 수준기로써 기록을 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생활에서 꾸준함을 확보하고 싶다. 만 40세를 향해 가는 나는 30대의 마지막을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싶다. 글을 쓸 때마다 나를 점검하고 싶다. 걸을 때마다 나를 다독이려 한다. 루시드폴은 ‘걸어가자’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 후회없이 다시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걸어가자.”
미국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내용 면으로는 한단계 성장할 수 있다. 친구가 말했듯 지금이 고민과 번뇌의 연속이라면 한단계 도약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약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자. 형식적으로 도약은 꾸준함과 평범함에서 나온다. 매일 아침일기를 쓰는 반복되는 과정이 나를 도약하게 만들 것이다. 사유를 벼리고 사색을 반복하면 나는 기존의 나와 달라질 수 있다. 남다름을 추구했다면 이제 나다름을 모색할 차례다. 어제의 나와 달라지려는 시도가 쌓이면 내 존재가 새로워질 것이다.
내일은 어머니와 누나가 온다. 440일이 지난 미국생활에서 ‘아들이, 동생이 이만큼 성장했노라’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지만 욕심이 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작년에는 상하반기 한번씩 정리해서 <이코노미인사이트>에 장문의 글을 실었으니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올해는 <미주한국일보>에 기회를 만들었다. 매월 첫째, 셋째 금요일에 기명칼럼이 실린다. 제목은 ‘실리콘밸리 스케치’다.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정리하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앞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절망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꾸준한 사색과 글쓰기만이 나를 살린다는 믿음을 품는다. 세속적이고 도구적인 의미에서 성공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의 성장을 확신하는 목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쓴다. 분명 나는 어제와 달라졌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염원하는 마음은 영원하다. 거대한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나는 내가 들이내쉬는 숨 하나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고 했던가? 나는 살아있다. 나는 지금 살아있다. 나는 여기에 살아있다. 이로써 나는 충만하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