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공백의 시간

by 김삶

산타클라라 콜맨 애비뉴 1401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쓴다. 비대면 주문용 주차구역 3번에서 프리미엄 로스트 커피 한 잔를 받았다. 아침에 차를 정비하려고 코스트코에 왔다. 타이어 공기압을 맞췄고 실내에 있는 먼지를 털어냈다. 오랜만에 차를 청소했다. 아이들이 타서 차가 엉망이다. 아이들용으로 마련한 차를 깨끗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탈 수 있을 정도로만 유지하려고 한다. 차 안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에서 <일상이 산티아고> 프로젝트를 할 때가 생각난다. 나는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


나의 강박에 대해 쓴다. 나를 괴롭히는 여러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순간순간 떠올라 나를 곱씹게 한다. 나는 기억에 대해 끝장을 보려고 한다. 기억에 대해 나의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명상하듯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어쩌면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나의 방식일 수도 있다. 내면의 한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두 발에 힘을 주고 굳건하게 서있다. 나의 강인함과 집념이 여기에 있다. 흘러가듯 내버려두며 세상을 관조하고 싶지만 태생적으로 나의 자세와 맞지 않다. 이제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라는 현실을 말이다. 적어도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은 아직 유효하다.


어제는 어머니와 누나가 도착했다. 공항에 나갈 때 카니발을 가져갈지 고민했다. 짐을 다 실을 수 있을지 긴가민가했지만 내키지 않아 티구안을 가져갔다. 3열을 접어 억지로 짐을 싣고 아이들은 엄마와 누나와 함께 태웠다. 6명이 탔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자동차 여행은 우리가 좁은 공간에서 하나의 팀이 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는 하릴없이 공통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음악도 함께 듣는다. 싫어도 좋아도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 기억이 우리의 마음에 남을 것이다. 모두가 모빌리티에 대해 말하는 시대, 이동성에 나만의 의미를 불어넣는다.

태세는 태도와 자세를 말한다. 태세가 전부다. (촬영: 김삶)

어제 저녁에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에서 읽었던 문장을 찾아 책을 뒤졌다. 1988년을 그는 공백의 해로 규정한다. <상실의 시대>의 벼락같은 성공으로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꼈고 6개월간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그가 팀 오브라이언의 소설 <Nuclear Age>를 번역하면서 힘을 내는 과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번역을 치유행위로, 정신적 치료행위로 정의했다. 그는 말한다. “이 작품을 번역한 뒤에 나는 다시 한 번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존재를 증명하려면 살아가면서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이고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다. 나는 마흔 번째 생일을 앞두고 다시 한 번 태세를 바로잡아야 했다.” 나 역시 차 안에서 엄마와 누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그동안 나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현실과 내가 처한 환경을 냉정히 살피며 다시금 태세를 바로잡는다. 하루키의 번역 행위처럼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나를 회복할 것이다. 길었던 공백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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