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날 아침 차 안에서 쓴다. 비몽사몽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니 5시 50분이었다. 이불을 개고 살금살금 집을 나왔다. 가족이 깰까 봐 조심히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시동을 걸고 코스트코 주유소로 향했다. 어제 새크라멘토 쪽 와인 농장을 갔다 오면서 기름이 다 떨어졌다. 오늘은 캘리포니아 마지막 여정이다. 저녁에는 올랜도로 출발한다.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았지만 기름을 꽉 채워놔야 한다. 다음주에 아내가 쓸 일도 많이 있을 것이다. 숙제를 하나 해결한 느낌이다.
콜맨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를까 사무실로 바로 갈까 고민하다가 맥도날드에 들렀다. 우선 화장실이 너무 급했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일기를 쓸까 사무실로 갈까 생각하다가 화장실부터 갔다. 이제 사무실로 가자, 차에 탔는데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비를 맞으며 차 안에서 일기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전화를 꺼내 프리미엄 로스트 커피를 시킨다. 노트북을 꺼내 자판을 두드린다. 빗줄기의 강도가 변한다. 세차게 내리다가 조금 잦아들었다가, 다시 빗줄기가 거세진다. 빗소리와 씽크패드 자판소리가 묘하게 어울린다.
어제 집에 왔는데 신문이 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편집국장께 전화를 했다. 저녁이지만 실물 종이신문을 구할 수 있는 법을 물었다. 산호세 지국장한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저녁 8시쯤 집으로 신문 한 부를 가지고 왔다. 어머니와 누나가 왔을 때 아들의 칼럼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미국생활을 내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다. 두 번의 국외근무를 비교하면 나는 이란보다 미국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즉자적으로 생각할 때 모든 것이 갖춰진 미국이 뭐가 어렵냐고 반문할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어렵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는 공간이 적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노력을 했을 때 돌아오는 결과가 큰 차이가 날지 모른다. 그래도 미국에 온 이상 뭔가를 시도해야 한다. 미주 한국일보 기고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계기를 하나 마련했다. 이란에서 한국신문인 경향신문과 내일신문을 통해 기회를 만들었듯이 미국생활을 마칠 때는 미주 한국일보 기고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기고료를 못 받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맘대로 해보려 한다. 그래도 실어줄 것이고 나는 보다 커진 자유를 어떻게 쓸지 실험해볼 수 있다. 글의 한계를 한 단계 높이는 계기로 활용하겠다.
방금 일기를 쓰면서 맥도날드 안을 바라봤는데 눈이 마주친 어떤 이가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다. 아마 홈리스인 것 같다. 나는 대응하지 않는다. 계속 내게 손가락을 날리길래 시동을 켜고 차를 식당에서 멀찌감치 다시 댄다. 맥도날드에서 저렴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홈리스도 있고 육체 노동자도 있다. 모든 인간의 본질은 똑같다. 삼시 세끼를 먹으며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하루살이라는 생각에 골몰해왔다. 내게는 하루밖에 없다. 개념으로는 미래도 있고 과거도 있지만 지금 쉬는 숨 하나가 나란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명심하자. 하루를 놓치면 전체를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