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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Jan 16. 2022

립 반 윙클, 한 잔 술에 20년이 흘렀다

립 반 윙클의 술과 맨해튼

립 반 윙클(Rip Van Winkle)


<자료: https://mythologystories.wordpress.com>


워싱턴 어빙이 1819년 발표한  소설  <스케치 북(The Sketch Book)>에 수록된 단편  「립 밴 윙클 Rip Van Winkle」.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3~1859)은 미국 문학의 개척자이다. 어빙은 『스케치북』에서 뉴욕의 북부에 위치한 허드슨강을 따라 펼쳐진 카츠킬 산맥(Catskill Mountains)을 우화적이고 마술적인 공간으로 그려냈다.  



미국 독립전쟁(1775년)이 일어나기 전, 허드슨강 주변 마을(현재의 뉴욕)에 립  윙클이 살고 있었다. 이름으로 미뤄보면 알 수 있듯이 립 반 윙클은 네덜란드계이다. 그는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서 산속으로 사냥을 갔다가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맨해튼을 탐험한 네덜란드 선조의 유령들)을 만나게 된다. 립 반 윙클은 이 사람들을 도와서 술통을 나르게 되는데, 그 대가로 “술”을 한잔 얻어마시게 된다. 술에 취한 그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을 청한다.



잠을 자고 난 립 반 윙클이 깨어나니, 옆에 두었던 사냥총은 녹이 슬었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길게 자라 있었다. 그 사이에 20년이 흘렀던 것이다. 마을로 돌아오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영국 조지 3세 국왕의 초상화 대신 조지 워싱턴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그 사이에 미합중국으로 독립한 것이었다. 립 반 윙클은 겨우 아는 사람을 만나서 장성한 아들과 딸을 만날 수 있었고 옛 이야기를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립 반 윙클의 동상, 뉴욕 / legendsofamerica.com>

한번 마시면 20년을 자게 된다는 술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동양의 신선이 마시던 술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중국 두강주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죽림칠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술꾼인 유령(劉伶)이 두강주(杜康酒)를 마시고 3년 동안 죽은 듯이 취해있다가 3년 후에 깨어났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립 반 윙클이라는 네덜란드계인 이유가 있다. 뉴욕은 네덜란드에 의해 개척됐고 처음 이름은 뉴암스테르담이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극적인 상황 변화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뉴암스테르담이 뉴욕으로 바뀌게 된 과정도 무척 흥미롭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향료 전쟁>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립 반 윙클


이 소설에서 나온 주인공을 바탕으로 “립 반 윙클”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세상의 변화에 놀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I felt like Rip Van Winkle, the changes after just 20 years were visible and tremendous.”

(나는 립 반 윙클[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20년간의 변화는 현저했으며 엄청났다.)


이 소설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가 일본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립 반 윙클의 신부(2016)'이다. "<립반윙클>에서 몇 십년이 걸려야할 그런 변화들이 오늘날엔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만남과 헤어짐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다. 순식간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는 현실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말이다.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포스터 / 네이버 영화>


맨해튼(Manhattan) 섬은 '모두가 술에 취한 섬'


맨해튼은 네덜란드에 의해 개발되어 처음엔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렸다. 1608년 네덜란드는 허드슨에게 향료 섬 로 개척을 맡기는데 허드슨은 새로운 강(허드슨강)과 맨해튼 섬을 발견한다. 이후 네덜란드는 맨해튼에 정착민을 보내고 뉴암스테르담을 건설한다.  



1800년대 헤커웰더(John Heckerwelder)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세기까지 인디언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허드슨이 온 것을 환영하며 술에 취했던 일화가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 다음은 조사 내용이다.



“처음 허드슨 일행과 추장들이 만났을 때 술을 권했지만 아무도 마시려고 하지 않았다. 한 용사가 용기 있게 나서서 마셨는데 푹 쓰러졌다. 인디인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애도했다. 그런데 몇 분 뒤 그가 벌떡 일어났고, 군중들에게 이렇게 기분 좋은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잔 더 달라고 요구했다. 곧이어 사람들은 모두 용사를 따라 했고 모두 취해버렸다.”



실제로 헤커웰더는 맨해튼이라는 이름도 그곳에서 술에 취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디언 말로 마나학타니엔크(manahactanienk)는 ‘모두가 술에 취한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맨해튼은 허드슨의 항해사인 로버트 주엣의 메모,  ‘마나 하타(Manna-hata)’ 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맨해튼(Manhattan)을 단돈 60 길더에 산 이야기


네덜란드는 1623년 맨해튼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뉴암스테르담으로 이름지었다. 네덜란드 총독은 원주민들에게 60 길더 어치의 물품을 제공하고 맨해튼 섬을 매입했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이때는 신대륙에 말뚝 박고 내 땅이다 우기면 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왜 땅을 매입했을까? 이 땅을 노리는 다른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영국과 프랑스에 이 땅은 네덜란드 땅이라는 것을 증거 자료로 내밀려면 이런 계약이 필요했다. 당시 북아메리카 해안지역엔 군데군데 영국과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었고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향료 때문에 뉴암스테르담이 뉴욕으로 바뀌다


17세기는 향료 전행이 한창일 때이다. 처음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활약했고 이후엔 네덜란드와 영국의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육두구가 생산되고 있는 곳이 인도네시아 반다 제도였다. 1616년 영국의 나다니엘 코트호프(Nathaniel Courthope)는 반다 제도 런(Run) 섬에 진출하여  주민들이 섬을 영국에 공식적으로 이양한다는 내용을 기록해뒀다.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몇십 년 동안 뺏고 뺏기는 쟁탈전이 벌어졌고 최종 승자는 네덜란드였다.  하지만 나다니엘의 기록은 나중에 영국과 네덜란드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국은 런(Run) 섬 쟁탈전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1664년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한다. 이후 1667년 브레다 협정으로 런 섬은 네덜란드에, 맨해튼 섬은 영국이 소유하기로 한다. 이 당시에 뉴암스테르담은 인구 1000명 미만의 작은 무역 중심지였고 런 섬은 금과 맞먹는 향료인 육두구의 주 생산지였다.



<향료 전쟁>의 저자 가일스 밀턴은 런 섬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영국의 나다니엘 코트호프를 기리며 이렇게 말했다.


“런(Run) 섬에서 보여준 불굴의 저항정신은 세계 반대편 역사가 새롭게 쓰이는 계기가 되었고, 그의 죽음으로 영국은 육두구를 빼앗겼지만 그 대신 세상에서 가장 큰 사과(빅애플은 뉴욕의 애칭)를 차지하게 되었다.”


https://blog.naver.com/mallian/222621239304





맨해튼에 살던 립 반 윙클이 술을 얻어 마신 후  20년 동안 잠을 자게 되었고 네덜란드인들이 허드슨강 유역 원주민들과 만나서 술을 권해서 '술에 취한 섬(맨해튼)'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가 묘한 관련성을 갖게 한다. 맨해튼 섬을 계약할 때 원주민들이 반대했으나 그들의 추장이 술에 취해서 토지매매계약을 해버렸기 때문에 「맨해튼(술주정뱅이라는 의미)」 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래저래 술과 관련 있는 맨해튼이다.


워싱턴 어빙의 소설 '립 반 윙클'과 가일스 밀턴의 '향료 전쟁', 관련 자료를 기반으로 이 글을 작성했다. 오늘날에도 립 반 윙클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시대의 변화에 놀라는 사람의 의미로 쓰인다. 영화 '립 반 윙클의 신부'도 그런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이어서 드는 생각, 혹시 내가  립 반 윙클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료 : 립 반 윙클 위스키 /oldripvanwink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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