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한 잘츠부르크
2025년 1월 초,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강당 안에 줄지어 앉아있던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서대로 연단 위에 올라 한 명씩 졸업장을 받았다.
그 가운데 몇몇 녀석들은 졸업장을 손에 쥐기가 무섭게 서슴없이 교장 선생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셀피를 찍었고 또 어떤 녀석들은 부모님을 향해 큰 절을 하거나 나름의 유쾌한 세리모니를 펼쳐 보여 장내에는 웃음과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이름이 불린 또 다른 졸업생이 연단 중앙에 섰을 때, 짧지만 단호한 외침 같은 목소리가 강당 안의 공기를 한 번에 빨아들이듯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멀찌감치 사람들 틈에 섞여 아들의 순서를 기다리던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눈물이 뭉글뭉글한 중년의 여인이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한 얼굴로 연단 위의 아이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해 냈다.
자식에 대한 대견함, 감격, 뭐 이런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오늘이 있기까지의 남모를 사연 때문일까.
그 순간 하나둘 터지기 시작된 환호성이 뜨겁게 달아올라 주변을 휘감았는데 나 또한 아프도록 두 손바닥을 힘껏 부딪쳐 박수를 쳤다.
…
졸업식이 모두 끝나고 중국집으로 가는 내내 그 중년의 어머니가 남긴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들이 연단에 올랐을 때 나도 그래볼걸 그랬나.
그랬다면 녀석은 보나마나 부끄러움에 쩔쩔매며 서둘러 그 자리부터 벗어났을 테지만 히딩크의 어퍼컷처럼 불끈 쥔 주먹을 어깨 위까지 끌어올리며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이렇게 외쳤다면 어땠을까 싶다.
햇빛이 적당한 초여름의 일주일 정도, 비엔나 여기저기를 느리게 쏘다니며 널널하게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우리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이 도시와 작별한다.
출국이 멀지 않았다, 아들
… 어. 아쉬워, 아빠
나중에 여자친구랑 다시 오도록
… (끄덕끄덕)
오스트리아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는 이름 자체가 ‘소금 도시’(salz + Burg)인 잘츠부르크.
인구가 8000여 명에 불과했던 17세기, 인접한 바이에른 공국과 소금 채굴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광산을 위주로 한 산업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곳.
그리고 1756년, 모짜르트가 태어났다.
미라벨정원
: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 애석하게도 전편을 다 본 기억이 없다.
잘차흐(Salzach) 강
: 19세기경 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강 위에 선박을 띄워 소금을 운반했다.
게트라이데(Getreidegasse) 거리
: 문맹률이 높았던 중세시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해야 했던 상인들이 판매하는 물품을 형상화한 철제 간판을 달기 시작했다.
모짜르트 생가.
상단 왼쪽의 숫자 '1286'은 이 건물이 건축된 해를 표기한 것.
반대편 오른쪽에 새겨진 '2009'는 내부를 리노베이션 한 연도.
도시의 많은 건축물들이 웬만하면 전체를 허무는 일없이 내부만 보수 혹은 변경하는 방식으로 외형 그대로 보존된다고 한다.
카피텔 광장에 새워진 슈테판 발켄홀(Stephan Balkenhol / 1957~ )의 구(sphere).
'발켄홀 모짜르트 공'으로도 불리며 지름 5미터의 황금색 원형체 무게만 2톤이라고 한다.
2007년 잘츠부르크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되었다.
호엔 잘츠부르크 성
그리고 숙소가 있던 동네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