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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vrin Jul 30. 2024

노엘 - 1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조잡한 새소리가 온 가게에 울려 퍼졌다.

손님이 왔다는 걸 반기는 소리인지 들어오지 말라고 쫓아내려는 소리인지 모를 기계음으로 만들어 낸 새소리.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미장원에서 머리를 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정수리 머리카락이 있는 대로 부풀어 올라 비둘기 한 마리를 얹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한 채 활짝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던 칼국수집주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혹시... 너니...?"


내 대답을 채 듣지도 않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이미 나를 자신의 품에 안아버렸다. 


"다녀왔어 엄마."


그러니까 내가 이 집을 떠난 건 햇수로 10년 차, 날짜로 3,789일이 막 지난 참이었다. 

딱 떨어지게 3,800일을 채울 걸 그랬나. 

엄마의 달뜬 조잘거림을 뒤로한 채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차였다.


"그래서 이번엔 아주 온 거야? 또 어디 훌쩍 가버리는 건 아니지?"


불안한 듯, 하지만 내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억지로 빚어낸 웃음을 띤 채로 마치 오늘 날씨 참 좋지? 묻듯 나의 앞으로의 계획을 슬쩍 떠보는 엄마를 보자니 웃음이 픽 나와버렸다.


"응 당분간은. 당분간은 이 집에서 있을 거야."


해준 것 하나 없는 자식이 뭐가 저리 예쁠까. '당분간'이라는 기약 없는 표현에도 뛸 뜻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가진 적 없는 효심이 생겨나는 것 같아 괜히 마음 밑부분이 뻐근했다.


"할머니는? 아직도 살아 계시나?"


하하 호호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은 그때였다.

할머니.

우리 집의 모든 행복과 갈등은 그녀에게서 시작되었다.

언제나 도망치고 싶었지만 내가 먹고사는 모든 것이 그녀의 통장에서 나온 돈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달아 버려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늘 바랐다.

그래서 고향에서 최대한 멀고, 기숙사를 갈 수 있는 학교를 택한 것은 당연하거니와

학교를 졸업한 다음엔 이런저런 일들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돈을 모았다.

엄마와 할머니가 모르는 세상으로 떠나고 싶어 미국에서 3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일생일대의 선택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얘는 그래도 네 할머닌데 아직도라니... 엄청 정정하셔 아마 지금쯤이면 모임 끝나서 집 와 계시긴 하겠다. 먼저 집에 가 있을래? 아님 오늘은 일찍 마무리할 테니까 엄마랑 같이 돌아갈래? 너 편한 대로 해."


"먼저 가봤자 문도 안 열어 주실 것 같은데. 그냥 엄마랑 같이 있다가 가지 뭐. 굳이 일찍 마무리할 필요 있나.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고 같이 들어가. 장사 그렇게 마음대로 하는 거 아냐 엄마."


"그래 역시 내 딸. 똑똑해. 어떻게 내 뱃속에서 너 같은 딸이 나왔을까. 그럼 여 안쪽 방에서 편히 쉬고 있어. 이따 문 닫고 같이 집에 가자. 먹고 싶은 건 없어? 국수라도 일단 한 그릇 줄까? 내 정신 좀 봐. 여태껏 먹을 거 하나 안 내어줬네. 복숭아 먹을래? 너 복숭아 귀신이잖아. 수박도 있어. 떡 먹을래?"


"엄마. 엄마 딸도 이제 삼십 대야. 그렇게 많이 못 먹어. 어차피 집에 가면 저녁 먹을 텐데. 그냥 좀 쉴래 피곤하네."


"그래그래 알겠어 엄마 그럼 밖에 있을게 필요하면 불러? 저녁에 뭐 먹을지 생각해 둬."


필요하면 부르라니.

어제도 그제도 늘 이렇게 지내왔던 것처럼 구는 엄마를 보니 이제야 고향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조그만 전기장판이 깔려있는 가겟방에서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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