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웃으니 다행이야

by OooAaa

너에게로의 거리는 5.6킬로미터.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면 51분, 지하철만 타면 46분, 도보로는 경로를 찾을 수 없음. 모든 교통 수단을 이용한 최적 경로가 안내되는 세상이지만, 끝내 한 발자국도 떼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제멋대로 눈물이 줄줄나는 어떤 날. 그런데도 냠냠, 밥 넘어간다. 이 사이에서 으깨어지는 쌀밥의 고소함, 아삭한 김치의 식감이 꼼짝없이 입맛을 돋운다. 어릴 적이었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헸겠지. 그랬지. 때 되면 배고픈 것이 무슨 슬픔에 대한 능욕처럼 여겨져 괜히 서럽고 겸연쩍었더랬지. 이제 내 슬픔의 경사는 완만하여서 더이상 휘청이지 않아 좋다. 갑자기 굴러떨어져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때론 울음 끝에 말라진 목도 축이고, 에라이 시답쟎은 농담도 하며 자박자박 걷기. 고도는 높고 경사는 완만하다만 대신 그 길은 끝이 없는 능선. 그리고 그게 삶. 슬픔에도 기죽지 않는 욕망들아 옳지, 배고프면 먹고 저물면 자야지. 몸은 그래도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올 풀린 스웨터같아. 이것마저 다 풀어헤치면 나는야 고독한 능선을 걷는 온순한 짐승. 무리짓는 짐승을 본 적이 있다.


때문에 곁을 지킨다는 것. 찌푸린 얼굴의 그이 곁, 내게라도 무언가 할 말이 있을까 싶어 기다린다. 말 한 마디 없다. 그렇구나. 또 기다린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신이 짜증과 우울과 성남으로 단단히 뭉쳐있을 때 그럼에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묵묵히 서로의 곁으로서 있는 것만이 당신과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서 사랑스러운 순간들만 있을까. 나는 버틴다. 지금의 나는 더 사랑할 수 있고 더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 싶으니까. 어떤 날 나도 한없이 예민하고 나약해지고 힘들 때 있을테지. 그 때 내 손은 고독하게 허공을 젓고 있지나 않을지... 아니, 미리 염려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너가 아니고, 너는 내가 아니다. 그렇게 나는 나일 뿐이므로 당신이 우울하여도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니가 나를 마다하지 않는 한 너를 향한 기다림이 다하지 않은 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웃으니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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