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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제로 Nov 30. 2020

"Good Luck" 원래 이리 다정했던가-프랑크푸르트

잊지 못할 팔찌가 가득했던 그의 팔

2019년 3월 초. 프랑크푸르트에서 혼자 4일간의 머무름을 끝내고 

드디어 학교 기숙사로 이사 가는 날이었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엄청난 짐들을 들고, 

심호흡하고 길을 나섰다. 


맙소사 나가자마자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은 있으나 마나였다. 

내 손에는 캐리어 두 개, 어깨에는 40L 배낭과 한국으로 

다시 떠나는 언니에게 받은 각종 주방가전제품으로 가득했다. 


진짜 포기하고 싶다 속으로 생각하며  낑낑 거리며 역으로 향했다. 

그때 돌이켜보면 고마운 두 명의 행인을 만났다. 

역까지 반쯤 왔을 때 무리 속에 있던 한 명이 망설이다 다가와 "도와줄까?"라고 물었다. 

그때 기록한 일기에 의하면  그의 눈은 참 '선했다'고 한다. 

호기심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섞인 밝은 눈빛이었지만, 

경계심으로 가득했던 당시의 나는 마음과 달리 "괜찮아요.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많았던 나의 짐
역으로 향하는 날 짐을 다시 꾸렸다.

그 사람이 속한 무리 역시 급하게 발검음을 재촉하고 있었기에 

더욱이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울음과 분노가 섞인 감정을 꾹 누르고 더 걸었다. 


한 겨울인데 코트 속으로 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가 잦아들고 이슬비로 바뀌었을 때 드디어 역에 거의 다다랐다. 

역사 입구. 담배 연기가 밀려와 얼굴을 찌푸렸다. 

근데 하필 그 흡연자 중 한 명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검은색 뿔테 안경, 여러 개의 팔찌, 곱슬거리고 조금 길던 머리카락. 


비 맞은 생쥐가 피난 가는 듯이 보였는지 도와주겠다며 다가왔다. 

두 번째 호의에 이제 마음이 무너졌을 만도 한데 그때의 나는 참 굳셌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가소롭고 웃기지만 그땐 그랬다. 

그래서 다시 정중히 거절하고  "정말 괜찮습니다.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당차게 말했다. 


근데 이번엔 상대가 더 고집스러웠다.

 "아니 너 안 괜찮아. 도와줄게 가방 이리 줘." 

그러면서 캐리어를 잡아채고 이번엔 다른 캐리어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낯선 이의 도움을 받는 것에 어색해하는 성격과, 

소매치기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이 모든 요소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내가 졌다. 


내 승모근, 팔근육, 다리는 '조용히 하고 그냥 부탁해'라고 외쳤다. 

속으로는 언제 어디서 소매치기당할지 모르니 계속 경계를 하면서도 

몸이 편해지니 참 좋았다.  



제일 자주 방문한 독일의 역, 프랑크푸르트 중앙역(Haup Bahnhof)


더불어 그는 나에게 그토록 어렵던 플랫폼 찾기까지 도와주며 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의심하는 눈초리가 불쾌했을 법도 한데 그는 참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왔어? 아 한국? 좋지" 

"그럼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아 대학교 기숙사? 전공은 뭐야?" 

"여기서는 경영학을 배운다고? 멋지다. 응원할게"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플랫폼에 도착했고 

그제야 안심한 나는 그 팔찌가 많이 채워진 손과 악수하며 정말 고맙다고 수차례 말했다. 

그리고 그 역시 안도의 미소를 짓는 나를 보며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는지 

기분 좋게 웃어 보이며 "행운을 빌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Good Luck!" 이 말이 원래 이리 다정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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