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 생활은 무색무취했다.
비록 여수 세계박람회 자원봉사와 같은 특별한 경험이 있기는 하였지만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학점 취득, 토익 공부 등 스펙을 쌓는데 집중했다.
캠퍼스 내의 로맨스도, 열정 넘치는 동아리 활동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할머니께 들었던 아버지의 학창 시절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학과 공부는 기본이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꿈꾸던 낭만과 열정의 대학 생활을 아버지라고 상상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에게는 그러한 사치는 그저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나도 나름 노력을 많이 했다.
학점은 꾸준히 유지했고, 토익 점수, 자격증 취득 등 스펙도 열심히 쌓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대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대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당연히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취업 시장의 문이 여전히 좁고, 부산 안에서의 취업은 더더욱 어려운 현실에서 그대는 내가 더 치열하고 깊게 고민하며 아등바등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대가 대학시절을 보냈던 것처럼!
그대는 대학시절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항상 1등을 차지했던 분이었다.
그런 그의 기준에 나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니, 앞으로 영원히 맞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대와 나의 간격은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그런 그의 눈높이에 나는 맞추려고 아등바등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하였는가!
나는 그 뱁새가 되었다...
인생에 감성을 더하다~!
감성부산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