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cky Ha May 14. 2019

앗, 벌써 여름




달력은 5월의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오전은 그래도 계절의 여왕답게 푸르른 산이며 들을 보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지만 한낮이 되면 5월이기엔 더워도 너무 덥다. 어제는 주말을 맞아 향남 집의 데크 주변에 잔잔한 꽃들을 심고 싶어서 아산의 꽃시장에 잠깐 들렀는데 햇빛이 어찌나 따갑고 날씨가 찌던지 화사한 색깔의 예쁜 꽃들을 맘껏 보리라는 기대로 갔다가 더위에 지쳐 꽃모종도 보다 말고 대충 구색만 맞추어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이미 기력을 다 잃어서 막상 집에 돌아와서는 꽃 심을 마음에 설레야 하는데 꽃이고 뭐고 다 싫고 어서 빨리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바야흐로 내가 가장 싫어하고 몸과 마음이 사람 구실 하기 조차 힘겨워하는 여름이 벌써 와 있는 것이다. 잠깐 누워 기운을 차리고 겨우 일어나 저녁을 먹고 그 길로 차를 달려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뉴스에서는 오늘 한낮 기온이 30도가 넘었다고 했다. 이제 한국에서 우렁우렁한 봄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여름 나는 것을 유독 힘들어한다. 그래서 여름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버티는 것이라고 젊은 시절부터 생각해왔다. 더위 앞에 나의 몸은 속수무책이다.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들다. 더위로 숨이 막히니 뇌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머리가 아프거나 무겁다. 더위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니 겨우 새벽녘에야 설핏 잠이 든다. 그러니 늦잠을 자게 되고 겨우 일어나서도 머리가 무겁고 몸이 노곤하여 입맛이 없다. 그래서 겨우 아침 겸 점심을 때우듯이 먹고 사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이런저런 일을 하자면 더위로 도무지 집중할 수 없고 기력이 다 빠져서 어느 틈엔가 졸고 있기 일수이다. 피곤함과 졸음, 더위와 싸우다 보면 또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정신이 혼미한 채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도무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인지, 그저 살아 있다는 표시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신체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보니 심리 상태도 덩달아 엉망이 된다. 피곤에 절어서 마음이 코딱지만 해지는 것이다. 별일 아닌 것에도 화를 내고 조금만 서운해도 울고 또 고집은 얼마나 세지는지 고집을 부리다 옆 사람과 싸움질하고 따로 자기가 일쑤다. 여름에 나의 상태가 이러할 진데 이제 겨우 아름다운 계절 5월에 한낮 기온이 7월 중순의 기온인 30도를 넘었다고 하니, 나는 잔치도 가기 전에 배탈이라도 난 것처럼 김이 새고 심통이 난다.     


나는 소위 운동권 대학생이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운동권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하나는 사회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노동해방을 지향하는 PD 그룹이었고, 하나는 한반도의 통일을 지향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자주적이며 민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NL 그룹이었다. 나는 NL 그룹의 주장을 지지했던 터라 우리 민족의 통일 문제에 적극적이었다. 8.15 광복절에 즈음한 범민족대회라는 통일 행사와 집회, 그리고 농촌의 일손을 돕고 농민 활동을 지원하는 농촌 활동, 6월 항쟁 기념 집회 등으로 특히 여름에 일이 많았다. 그저 내 몸 하나 끌고 다니기도 힘든 여름철에 아스팔트나 그늘 하나 없는 들판에서 최루탄과 땡볕에 맞서야 하고, 후배들까지 챙겨야 하는 집회와 활동들은 나에겐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다.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어디 숨어서 딱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한 번씩 일을 끝낼 때마다 다시는 못 할 것 같아도 다시 일이 닥치면 또 하고 또 하고 했는데 그런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릴 때부터 저질 체력이어서 조금만 피곤해도 앓아눕고 잔병치레를 하던 내가 한여름 온종일 퍼붓는 비를 맞고 한기에 떨다가 어느 농민분이 제공해 준 담뱃잎 말리는 기계 안에서 잡아가도 모를 꿀잠을 자고 다음 날 젖은 옷을 입고 땡볕에 나가 시민들에게 통일의 당위를 선전했던 그 에너지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불가사의하다. 아마도 그 힘은 젊음이 가져다준 뜨거운 피에서 나온 것이리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오히려 영광된 일이라는 순수한 패기에서 분출된 열정이었을 것이다.     


너무 일찍 와버린 여름의 더위를 이제 어떻게 보낼까, 요모조모 머리를 굴리고, 지구가 아파서 나까지 힘든

세월을 보내나 하는 마음에 누구나 다 얘기하는 환경 보호의 담론을 꺼내려다 애꿎은 지난 젊은 시절의 여름이 떠올랐다. 그 여름이나 이 여름이나 빨리 오고 늦게 오고의 차이만 있을 뿐 뜨거운 것은 똑같은데, 괜히 겁내고 투덜거리지 말자. 나이를 먹었으니 이제 계절의 오고 감에 조금은 더 담담하기로 하자. 그러려면 체력부터 관리해야 하니 요가수련에 이런저런 핑게대지 말고 오늘부터  빠지지 않고 꼭 참여하기로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이 뭐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