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수그레한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김밥 되세요?”하고 물어보았다. 지난여름 도봉계곡 각석군 인문학 탐사에 나섰던 날이다. 도봉탐방지원센터 들머리에 이르러 김밥집을 찾았다.
아주머니가 안에 대고 “김밥 하나!”하고 소리쳤다. 주방에서 중년의 아주머니가 김밥을 싼 검정 봉다리를 들고 나와 네게 건네주었다. 계산을 치르고 계곡 탐사에 나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계곡 입구 「북한산 생태탐방원」은 공사 중이었다. 주변 각자 바위와 가학루(駕鶴樓) 정자를 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계곡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조선말 기세등등했던 흥선대원군마저 무릎을 꿇게 했던 신정왕후 조대비, 그녀의 별장터인 광륜사를 지나 물소리에 마음을 싣고 거북이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도봉서원에 이르렀다. 서원을 복원하려고 땅을 파다 보니 절터 유물과 기와가 나오고 영국사 사찰 기록이 나왔다고 한다. 옛 주인은 영국사인데 유림 입김이 세었는지 그곳엔 도봉서원 안내문이 서 있다.
작은 암자 금강암 계곡 물속에 잠긴 고산앙지(高山仰止) 각자를 보고 나서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문사동 계곡에서 문사동(問師洞) 마애 각자를 찾아 나섰다. 각자 뒤편 도랑에 발을 담그고 김밥을 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나중에 그 식당에 가봐야지 하고, 계류에 몸을 맡기고 등을 바위에 기댄 채 눈을 감고 탁족을 즐겼다.
우이암 산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하산하기로 했다. 그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차지했다. 산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 영웅담을 꺼내놓고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부추전에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중년의 주방 아주머니가 아침에 김밥 사가신 분이 아니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하고, 아주머니는 참 기억력이 좋으시다고 하니까 발그스레 얼굴을 붉혔다. 나이를 먹어도 세상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
부추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주변을 둘러보니 등산객이 거지반 들어찼다. 맛집인가 보다. 주문한 부추전이 나왔다.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어릴 때 먹던 부추전 생각이 났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기분도 그럭저럭한 날에는 부추전을 부쳐 먹었다. 작은 누나는 날씨가 흐린 날에는 부추전을 부쳤다. 누나가 부친 부추전에 꽁보리밥을 물에 말아서 먹으면 입 안에서 부추향이 났다. 그때는 누구나 그렇게 먹으니까 그런 줄 알고 군말 없이 먹었다.
부추는 텃밭에서 칼로 밑동까지 싹둑 잘라 장독대 더무에서 물 한 바가지 퍼서 헹구듯이 씻으면 그만이다.
부추를 벤 자리에는 부엌 아궁이에서 재를 한 대야 퍼서 덮으면 된다.
고이 모아놓은 오줌통에서 오줌을 똥장군 푸는 바가지로 한가득 퍼서 뿌려 준다. 그래야 부추가 쑥쑥 자라고 며칠 지나 또 부추전이 먹고 싶으면 그 옆에 자라는 부추를 잘라서 전을 부쳐먹었다.
그 시절엔 먹을 게 없어서 아이들은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서 먹었다. 옥수수빵과 옥수수 죽을 먹으면서 학교 다니던 시절에 시골에선 먹거리가 없었다. 우린 밀장국을 끓이고 부추전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밭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추가 쑥 자라 있었다. 엊그저께 부추를 베서 전을 부쳐 먹었는데, 그새 부추는 또 자랐다. 저녁 밥상엔 으레 부추전에 무채를 썬 꽁보리밥이 일상이었다.
주문한 부추전이 나왔다. 부추전은 찢어 먹어야 제맛이다. 얇게 부친 부추전을 한입 베어 물자 바삭바삭한 식감에 부추 특유의 향이 입안에 가득 찼다. 전의 맛과 향이 어우러졌다.
그 부추전 맛을 잊지 못해 도봉산에 갈 때마다 그 집에 들러 부추전에 막걸리를 시켰다. 맛은 변함이 없었다. 어떻게 부치는지 궁금했다. 다음에 들리면 꼭 물어보아야지 생각만 하다가 여태 물어보지 못했다.
어느새 그 집 단골이 되었다. 무수골 글을 준비하다 하산길에 두 번, 도봉계곡 탐사 한 번, 그리고 보문능선이 좋아 도봉사에서 보문능선에 올라 하산하면서 또 한 번 들렀다.
언제나 산꾼들이 득실득실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귀청에 맴돌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도 여럿이 떠들어대니 마치 시골 장터 같았다. 그래도 부추전은 맛있었다.
낼모레 도봉계곡 탐사 마무리도 할 겸 다시 들러볼 참이다. 부추전에 막걸리도 한잔하면서. 이번엔 꼭 부추전 부치는 요령을 물어보고 싶다. 얄브스름하고 바삭바삭한 식감에다 식용유 냄새도 그리 나지 않는 부추전 부치는 솜씨를 말로 들어서 흉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도 그 맛을 재현해보고 싶다. 오늘은 집에서 부추전을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