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에 깼다. 문학동네에서 주문한 책이 왔다. 평소 같았으면 번쩍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했겠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밍기적거리고 싶었다. 사실 오픈 시간인 낮 12시는 이미 지났다. 자영업자라 참 다행이야. 내가 사장이라 정말 다행이야.
늦었지만 그래도 출근은 한다. 문을 열고 새로 도착한 책을 들여놓는다. 서점 문 앞에는 죽은 날벌레가 꽤 많이 쌓여 있다.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이 날벌레들에게도 탄생의 이유가 있을까 싶다. 한낱 치워야 하는 쓰레기가 된 날벌레는 내일이면 또 똑같이 이곳에 쌓여 있을 거다. 흔해 빠지고 반복된 죽음에는 비애도 애도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먼지를 턴답시고 요란하게 움직였더니 그새 땀이 났다. 날이 덥길래 에어컨을 틀었더니 우웩! 이게 대체 무슨 조화야? 어젯밤 분명 에어컨 탈취제로 냉각 팬을 청소해 놓고 퇴근했는데! 에어컨에서 진한 식초 냄새가 풍겼다. 결국 냄새가 모두 빠질 동안 문이란 문은 온통 열어 두고 에어컨을 풀가동하는 에너지 낭비를 해야 했다. 지구야 미안해.
택배를 까서 새 책을 구경한다. ‘하, 오늘은 요렇게 인스타그램 피드를 하나 건졌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 게 사실이다. 1일 2인스타는 자영업의 기본인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다 보면 더 이상 올릴 사진도 내용도 없다. 반가워, 새 책! 모두가 그러하듯 나도 책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택배 내용물은 전자기기>귀금속>옷&패션잡화>화장품>책>식품 순으로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새로 들어온 책을 예쁘게 진열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어째서 눈으로 보는 것만큼의 예쁨이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을까? 마음이 조금 상한다. 책은 역시 실물파인가? 서점 안에서 사진을 찍으면 실제보다 많이 어두침침하게 나온다. 그렇다고 밝기를 높이면 그때는 또 아주 백지 마냥 하얗게 변해버린다. 어째서인지 중간이 없다.
서점에서 가장 큰 노동은 청소를 하는 일이다. 두번째로 큰 노동은 설거지고. 부지런히 일을 해서 모든 노동을 끝냈다. 그러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된다. 청소를 마치고 손님 맞이 준비를 끝낸 후에 마시는 커피 한잔과 함께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는 이 시간. 오늘은 아메리카노가 아닌 콜드브루다. 콜드브루는 어제 막 내린 거라 향이 짙다. 내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내가 콜드브루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내린다. 이 묘한 부드러움이 목구멍을 타고 꿀렁하며 내려가는 순간, “오! 나의 에티오피아!”가 절로 외쳐진다. 어찌나 맛이 좋은 지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해야겠다는 사람도 몇 봤다. (거짓말입니다.)
앉아서 새로 들어온 책을 읽는다. 역시 서점 하길 잘했어. 신간이 오면 내가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다. 심지어 공짜로 읽는다.
오픈 직후 놀랍게도 감사하게도 손님 몇 분이 오셨고, 책을 사셨다. 순이익을 계산해봤더니 만원은 되길래 ‘앗싸, 좋구나!’ 하고는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샌드위치 하나에 단팥빵 하나를 곁들였다. 5,500원의 지출이 생겼다. 오렌지 주스가 마시고 싶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그냥 정수기 물을 마시기로 했다. 뚝딱 식사를 마치고 다시 소파에 앉아 이것저것 꼼지락거렸다. 허리가 아파오는 걸 보니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보다. 이제는 좀 누워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서점 구석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 떠보니 퇴근시간이 되었다. 열심히 보람찬 하루를 보냈는데, 어째서 허무한 기분이 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