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흐르는 강물처럼(1992)
환경
부모님과 형 노먼, 친구들, 몬태나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플라이 낚시. 폴은 과하지도, 그렇다고 방임하지도 않는, 신앙심이 깊고 교육적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인 노먼은 그와 함께하며 좋은 친구가 돼주었다. 폴은 형과 동일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는 형과 함께 몬태나의 아름다운 자연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플라이 낚시를 즐겼는데 이는 노먼 또한 마찬가지다. 노먼은 잠시 고향을 떠났다. 그는 다트머스 대학교에 다니며 몬태나에서와는 전혀 다른 환경을 만끽했다. 폴은 형과는 달리 몬태나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는 같은 가정과 같은 친구들, 같은 환경에, 같은 취미를 가진 폴과 노먼에게서 첫 번째로 발견한 차이점이다.
제시의 오빠인 닐은 몬태나를 떠나 할리우드로 갔다. 낯선 환경에 있다 몬태나로 돌아온 닐이었지만 그도 그리 건강해 보이진 않는다. 자기 위로를 하기 위함인지, 불안을 덜고자 그런 건지 몰라도 그는 수시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일상마저 망가져 있다. 새로운 환경이 그를 주눅 들게 하기라도 한 것인지 그는 자신을 최대한 있어 보이게 하는 거짓말만 늘어놓는다.
폴과 닐 모두 노먼과 제시처럼 같은 부모님의 영향 아래에서 부모와 형제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두 사람 다 유쾌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아팠고 그로 인해 그들은 망가져 있었다. 폴은 도박을, 닐은 거짓말을 택했다. 그들은 그 선택으로 더욱 빠르게 망가졌다.
비교와 불안
폴은 플라이 낚시로 유명하다. 그의 낚시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행위 예술에 가깝다. 아름다운 곡선의 연속과 그 위로 퍼져나가는 물방울, 그 모든 것이 기존의 자연이 가진 리듬, 흐름에 속하고, 따르며, 때로는 거스르며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힘에 치우치지도, 자연의 힘에만 치우치지도 않은, 균형적인 아름다움.
노먼의 낚시는 폴의 낚시와는 달리 성과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폴보다 물고기는 잘 잡는다. 노먼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자연의 리듬을 따르지만, 폴의 낚시처럼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기는 어렵다. 그의 행동은 예술이라기보단 물고기잡이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노먼의 낚시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어찌 됐든 물고기만 잘 낚아 올리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예술의 평가는 어렵다. 그 분야에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폴의 예술적 진가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발견되기 어렵다. 자신조차도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낚시의 경우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잡기 위한 과정보다는 결과에 눈이 더 많이 가기 마련이다. 자신의 대단함에 대한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물이라도 있다면 그 과정에 들인 노력이 떠올라 위안이라도 됐으련만 그런 증거물도 없으니 그마저도 어렵다. 해서 예술점수보다 성과점수가 더 높은 노먼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그로부터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노먼은 글에 재능이 있다. 글로 대학을 가고, 일도 얻는다. 글은 낚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술적 평가가 쉽게 이뤄진다. 문학은 이전부터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아왔고 이전부터 많은 이들이 평가해왔기에. 해서 노먼은 자신의 글을 평가받을 기회가 많았고 글을 잘 쓰는 편이었기에 그 평가에서 긍정적인 평을 받을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글의 장점은 자신의 결과가 자신의 눈앞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자신이 남긴 자신의 증거물은 계속 지속된다.
우리는 나에게, 주변인들에게 인정받길 원한다. 인정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높아지고, 이는 자존감을 높이는 데까지 기여한다. 이런 부분이 폴에겐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낚시꾼이자 기자로 마을에서 유명한 그였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까지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강인함
“폴은 달랐다. 내면 깊은 곳에서 강인함이 표출됐다.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두 사람의 차이는 환경변화와 낚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그 둘은 시작부터 달랐다. 노먼은 상대적으로 나태하다 느껴질 만큼 폴보다는 어딘가 열의가 부족하다. 그 덕인지 상대적으로 유연해 보인다. 반대로 폴은 어린 시절부터 다소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생각이 단단하달까? 또한 자신이 강한 사람임을 안다. 그 강인함은 자신을 지키기 충분하기에 타인의 도움 따윈 필요 없다. 그는 간혹 자신의 강함을 외부에 드러내고자 한다. 당시 원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했음에도 원주민 여자와 함께한다. 그녀를 정말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강함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그런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녀와 함께함으로써 그는 외부의 차디찬 시선을 견뎌야 했다.
도박, 처음에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을 테지만 이후에 마주한 폴은 죽임 당할 만큼 도박에 미쳐있었다. 도박은 정신적 싸움이기에 강한 나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강한 나이기에 한낮 게임에 불과한 도박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 생각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외부의 현실 세계에서 받은 불안을 사실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 도박이란 더 큰 불안, 누구도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불안으로 무마하려 한 것일까. 폴은 자꾸만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고, 더 자극해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단단함은 지켜내기 어렵다. 단단할수록 주변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소중히 하고 중요시하는 것만 견고하게 쌓아 나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위험하다. 지키기 위해 경직돼 있다면 주변의 다른 기회, 다른 경험, 다른 소중한 것을 놓치기 쉽다. 그로 인해 그 사람의 세계는 갈수록 좁아질 것이고 그 좁은 세상 안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기능, 가능성마저 갈수록 적어진다. 외부에서 받는 위험, 상처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많아지는데 그런 조그만 도구상자로 대처하기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난 이기고 싶다. 강함을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폴도, 닐도 약해진 자신을 속인다. 폴은 일부러 혹독한 상황을 골라서 자신에게 갖다 바치고(일종의 단련 수련처럼), 닐은 허세용 거짓말을 한다. 외부의 도움은 거절한다. 도움을 받는 순간 자신이 도움이나 받아야 하는 약한 사람이었음을 인정하게 될 테니까. 강인함을 지키는 단단함은 나를 지켜주기는커녕 나를 망가뜨리기 좋은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