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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Feb 24. 2024

세상의 정의가 나를 부정한다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


죄의 기원


사람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자연,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외롭게 자란 한 남자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한 남자가 만났다. 그곳에서 외롭게 자란 남자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끔찍하게 죽임당한 한 동성애자의 처참한 몰골을 잊었다. 그 아름답고 자유로운 곳에서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남자는 외로운 남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껏 사랑하였다.


이들의 부적절한 사랑은 지극히 정상적인 한 사회인에 의해 처음으로 들춰진다. 이로 인해 이들은 헤어졌고 각자의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여느 남자가 으레 그렇듯 지극히 정상적이게도 여자와 결혼하고 자녀도 낳는다. 이들은 정상인들의 사회로 귀화하여 그들의 법칙에 순응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마음이 멈추려 한다고 멈춰지겠는가. 서로를 너무도 원하기에 그들에게 지워져 있던 정의의 무게마저 잠깐이나마 외면하며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마냥 몰래,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산으로 가 또다시 열렬한 사랑을 나눈다.


그런 세월이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난다. 잠깐씩 이뤄지는 몰래 하는 사랑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다하였건만 이들의 삶은 그 잠깐의 희열 덕에 활력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비극을 향해 나아간다. 사랑 위에 정의가 있기 때문이고, 이 정의 속에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 정의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특히 두 사람 중 적어도 한 명에게만큼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래서 죄인이다. 내 의지는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완벽하게 타인이 심어놓은 정의일지라도 내 안에 그 정의가 살아 숨 쉬는 한 나는 그 정의에 의구심 한 번 내비치지 못한다. 그렇게 타인의 논리 하에 무력한 죄인이 되어야만 한다.



짓누르는 시선들


그들이 나눈 사랑의 대가는 참으로 무거웠다. 부적절하다 여기는 듯한 남들의 시선은 참으로 무겁다. 옳음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진다. 한두 명에서 시작한 부정의 시선은 나의 눈으로 옮겨 와 모든 이가 나를 부적절한 사람으로 보는 것만 같은 효과를 낳는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이들의 눈 속에서도 기어이 나를 향한 싸늘함을 느껴내고야 마는 것이다. 나와 마주친 모두가 나를 비난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다. 실재하지 않는 시선의 무게에 질식할 것만 같다.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나의 자아와 욕구는 내리눌러진다. 내 안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연스러움은 세상 빛을 두려워하며 자꾸만 한 발씩 뒤로 물러난다. 무섭고 겁이 나는데, 나란 존재가 조금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대로 내뱉어지는데 어떻게 과감히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겠는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받고 위협을 받는 자에겐, 부적절한 사랑을 나눔으로써 얻게 된 부정적인 시선의 무게에 짓눌려진 자에겐 안심하고 설 수 있는 자리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무력감, 절대적으로 이길 수 없음


내가 나를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건, 내가 나를 행복할 수 없게 만드는 건 이겨내기 어렵다. 나의 삶을 좀 더 나은 위치로 옮겨놓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어려울지도 모르는 일이 있다. 사회를, 종교를, 아버지를, 아내를, 방금 나와 눈 마주쳤던 저 사람을,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게 옳지 못하다고 내려진 정의를 애써 무시하며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 남자를 온 마음을 다해 오롯이 사랑하는 일. 이런 어려운 일을 겪는 자는 마음으로는 간절히 그를 원함에도 모두가 옳다고 내린 정의에 나마저 그게 정말로 옳아서 옳다고,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절대 진리라 여기며, 그를 사랑하고 원하는 마음의 깊이만큼 차곡차곡 죄책감을 쌓아 올린다.


정의로운 사람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죄스러움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으로 군말 없이 고개 숙여야 한다. 정의에 부합하지 못한 삶을 사는 자신을 견뎌내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세상에 맞서 싸우기 위한 힘이 부족한 판에 남아있던 힘마저 죄책감의 손짓 한 번에 삭아 없어진다. 무력을 향해 침식되어 간다. 건실한 두 남자를 때려눕힐 힘이 있던 지난날의 젊은 남자는 오간 데 없고 한 남자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늙은 남자만 남았다. 한없이 무력하고 무력하다.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당당함의 근원은 소실되었다. 그저 무력하기만 하다.


서로 사랑하는 두 남자를 위한 집은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남자를 사랑하는 자에겐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집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잃어버린 살아남은 남자는 세상 속에서 진실한 자신은 숨긴 채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사랑하는 존재, 딸 알마의 결혼식을 위해 사랑하는 남자에겐 주지 못한 여름날의 순간을 내어준다. 난 그가 딸에게 소중하고 간절한 6월의 어느 여름날을 내어주는 장면에서 그의 정의로운 모습을 보았다. 세상이 내린 정의에 부합하는 그런 정의가 가득한 모습을. 세상의 정의 앞에 무력해진 남자는 다른 평범한 아버지들과 같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딸아이를 위해 남은 힘을 내어본다.


사랑하는 남자의 존재가 무로 돌아가고 나서야 홀로 남은 남자는 온전한 자신의 공간을 얻는다. 사랑하는 이들을 포근히 감싸안았던 옷들이 그의 조촐한 집을 채운다. 비록 세상에게는 졌지만, 비록 무력해졌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남았고 이들의 온기도 남았다. 이기진 못했어도 그의 외로움은 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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