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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Jul 17. 2024

40 조각. 만약에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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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조각



사람을 한순간 처박아 버리는 말, 만약에.

가정법을 쓰는 순간,

이미 지나온 것, 이뤄낸 것, 헤쳐 가는 것,

나아지는 것, 나아질 수 있는 것,

과거에서 현재에 이어 미래까지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걸 알면서도

자꾸 입에 올리게 된다.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그런 경우의 수.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가능성을 부여하며 부풀리는 헛된 공상.

다른 일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때 병원에 갔다면, 수술까지는 안 갔을까.

커피를 바지에 쏟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까.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조금씩 벌어진 간격으로

놓친 것을 떠올리는 마음이란.

구태여 보태지 않고도 하루하루 살기가 벅찬데.

조금 늦게 일어나 준비가 늦어서

신호등 바뀌는 시간이 다투어 뛰었지만

유난히 열차가 빨리 와 타지 못하는.

또는 신호등에 가로막혀 버스를 놓치고.

거듭 설명을 듣고도 대단히 실수를 하고.

실수 앞에는 꼭 ‘대단히’를 붙이고.

지도를 보고도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비 오는 걸 알면서도 우산을 잊어 새로 사고.

잘못 산 물건 환불하려고 보니 영수증이 없고.

나아지기 위한 노력이 뒷걸음질 치게 하고.

멋진 건 둘째치고 바보 같지만 않아도 참 좋겠다 싶은.

그래도 만약에 내게

알라딘을 붙잡을 기회가 온다면,

어떤 3개의 소원을 빌어야 할까.

중고 서점에 책을 팔러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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