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 어떤 건진 모르겠지만, 엄마와 사이가 유독 좋은 건 맞다. 언니와도 터울이 있는 동생과도. 우리는 종종 맛있는 식사를 차려 먹거나 밖에서 사 먹는다. 엄마 생신은 꼭 함께 기념하고, 엄마가 지치거나 힘들어 할 때도 꼭 모여 회복시키고 만다.
나는 언제나 이별이 두렵다, 다른 사람 못지 않게. 사랑하는 걸 잃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겪어본 적도 없다. 그런 건 겪는다고 알 수 있거나 다음이 괜찮아지는 게 아닐 테지만. 내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는 모든 순간에, 성장했다고 분명하게 느끼고 더이상 사회초년생이 아니고 몸이 조금씩 나이듦을 느낄 때. 그럴 때 나는 모든 운명과 맞서 싸우는 기분이다. 지금 이 순간만 알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아등바등 애쓴다.
요즘은 날이 더워 무시로 지치고, 우리는 땀이 많아서 더 순식간에 쓰러지고 만다. 오이도 먹고 수박도 먹고 찬물과 미지근한 물도 챙기지만, 무더위는 우리가 놓치는 빈틈을 파고 들어 무력화시킨다. 엄마가 나를 품고 있을 적에는, 아주아주 더운 여름이었다고 한다. 무더위에 녹아내릴 듯한 다리를 움직일 때면, 그 여름을 생각하게 된다. 휴대용 선풍기도 에어컨도 부족하던 시절을 살던 아직 너무 어린 어른을.
또 떠오르는 여름은,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다. 엄마는 두 아이에 새로 태어난 아기까지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건 곁에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경고였지만, 그걸 알아차려줄 어른이 전혀 없었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도 얼굴을 모르시고, 엄마의 아빠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고, 엄마의 시댁은 긴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나와 이모만이 알아차렸다고. 한때 엄마의 지인이였던 이모는, 우리 셋을 다 데리고 식당에 가서는 도맡아 챙기며 엄마께 바지락칼국수를 사주었던 사람. 엄마를 대신해 나를 하원시켜주었던 사람. 그시절, 어린 마음에도 이모께 너무 감사해서 다 커서 어른이 되면 효도하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이모가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내겐 엄마가 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엄마는 어느 날부터 단어를 잃기 시작했으니까. 빨래할 양말을 들고 싱크대에 가거나 행주를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거나 멍하니 있는 모습도 보였다. 뭘 하려고 했는지 자꾸 잊었고, 손에 뭘 들고 있는지도 잊었고, 뭘 잊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조바심으로 마음을 떨었다.
다행히도 그건 한때로 끝났다. 그 뒤로 엄마는 그런 적이 없다. 그러나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뜨거운 햇빛이 창을 뚫고 거실을 비출 때,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가 일순간 멍하니 멈춰있던 시간은 내 안에서 반복해 흐르고 있다. 영원한 도돌이표다.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감각할수록 더 예민하게 감각이 트이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그 뒤로 열심히 불효하고 또 효도했다. 엄마와 온힘을 다해 싸우다가 온힘을 다해 엄마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취미 중에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같이 했고, 가끔은 꽃 구경을 갔고, 맛있는 걸 사 먹고, 유명하다는 것들을 사다 드렸다. 이제 좀 마음 놓아도 되나 싶었을 땐, 척추가 골절되었다.
엄마도 사람인 것이다. 엄마는 인형이 아니고, 엄마라는 직책을 갖고 있을 뿐, 나와 같다.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도 있고 지치거나 힘들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병이 나거나 조금 미치기도 하고, 안 하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쉬고 싶을 땐 쉬고, 사고칠 땐 치고, 하라는 건 꼭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은 쳐다 보지도 않고, 홧김에 저지르는 일들은 주로 뒷목을 잡게 한다.
나는 요즘도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무엇도 잃고 싶지 않고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은데, 나는 한 명뿐이라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다.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내가 나를 키울 땐 엄마를 챙길 수 없고, 반대로 엄마를 챙길 땐 나를 보살필 수 없다. 그렇다고 엄마를 내가 꼭 챙겨줄 일은 절대 아니지만, 함께인 순간이 있고 각자의 시간이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운용해야 좋을지, 그게 고민인 것이다. 되도록 즐겁고 싶으니까. 가능한 많이 웃게 해주고 싶으니까.
오늘의 나는 퇴근 후 카페에 들러 한 주를 돌아보며 책을 조금 읽었고, 동시에 엄마가 계시는 집으로 아이스크림을 배달시켜 드렸다. 맛있는 빙수 가게의 영업 시간이 끝났으므로 내일이나 다음에 같이 먹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엄마를 단면으로 보고 싶지 않다. 최대한 입체적으로 보고 싶다. 그래서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기억 구슬처럼. 이런 소회를 10년 뒤에, 20년 뒤에도 말하고 싶다. 같은 추억만 반복하는 것 말고, 그 시간만큼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 채워서. 엄마가 내 곁에, 되도록 많이 되도록 오래 그리고 되도록 건강하게 계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