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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Aug 13. 2024

02  미움과 무념

생각하는 주체는 나. 그러나 종종 생각에 잡아먹히고 만다. 특히, 부정적인 것에. 미워하고 분노하고 증오하고 혐오하는 순간, 어김없이 망가진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신념 모두. 그중에서도 가장 시초가 되는 건 ‘싫다’고, ‘싫다’는 금방 ‘미움’으로 번진다. 그런 치우친 마음을 버리지 못할 때, 채소를 썰던 칼이 발등에 꽂히거나 손가락을 베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발을 접질리고, 샌드백을 치는 순간 손목이 꺾이고, 물레의 기물은 구멍이 뚫리거나 찌그러진다.


차라리 나무처럼 거센 비바람에 부러지면 나을까. 한번씩 숨을 돌린 뒤, 미워할 새 없이 나아가고 회복하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가벼이 흔들릴 수 있을까, 무념한 상태로.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쉼 없이 살아 흔들리고, 나무처럼 부러지는 틈도 없이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온다.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다.’ 정신 건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보면, 많은 전문가가 선택에 집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할 때, 그것을 받아들여 상처를 입을지 아니면 흘려보내 타격을 받지 않을지는 선택에 달려있다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종착지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불호의 마음을 지니는 순간부터 연연하지 않고 끊어내는 때까지 가지각색으로 내상을 입고 마니, 울퉁불퉁한 흉을 마주할 때면 모난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 시간에는 멈춤이 없어 언제나 정신 없는데, 와중에도 미운 사람은 쉬지 않고 생겨나 흉만 늘어나는 듯하다. 싫을 것도 미울 것도 없이 물에 떠다니듯 무념한 상태로 살아가고 싶으면, 그만큼 훈련하면 된다는 것 같은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인생 선배들을 보면 죽기 전에 가능하긴 할까 싶어지고. 다시 도돌이표에 도달해 무념과 멀어지며 생각의 열차에 탑승하고 만다.


생각하지 않는 것을 넘어 선호도를 없애는 마음. 싫어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따라서 불필요한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일은 어렵다. 때때로 작은 것에도 화가 나고,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극도로 싫고, 대단하지 않은 까닭으로도 한 없이 미워지고 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까닭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길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놓칠 때, 세상은 붕괴되니까. 역시,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미워하지 않고 ‘그런가 보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되었군’ 하는 되도록 무념무상한 태도로 대하는 것. 내가 나를 너그럽게 대할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무의미한 잣대를 대지 않고, 그럼으로써 불필요한 마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울 수 있으므로. 오늘도 애써 갖는 무념한 시간이 자유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미움을 한 스푼 덜어내본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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