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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조각. 도난주의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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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조각



비둘기처럼 흔한 참새를

겨울에는 눈여겨본다.

통통한 겨울 참새는 언제 보아도 귀엽다.

‘뚱뚱하다’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부정적이거나 불편한 경우가 많지만,

겨울 참새에게는 그만한 표현이 없고.

‘뚱뚱한 겨울 참새’라고 소리 내 말하다 보면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걱정과 고민도

자연 앞에서 우주의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가 되어 소멸하고 만다.

그러면, 내게는 참새만 남아

뚱뚱한 참새가 전기줄을 걸어 다니는 모습이나

가라앉듯 날아오르는 자태를 생각하는 것이다.

학교 앞 컵볶이 하나면 살만하던 시절을 지나서

꿈과 희망이 언제나 위태롭게

흙탕물에 담가지다가

비바람에 찢겨 나가다가

아니면 뿌리째 뽑히면서

겨우 한두 가닥 덜렁덜렁 남아있는 어른의 삶이란.

나라가 내일 망한다고 해도

하고 싶은 게 많고

지키고 싶은 게 있고

괴로웠던 순간에 자유롭지 못하다가도

오늘 좋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힘을 내보는 것.

내게 있어 새라는 동물은 관심 분야에 없던 영역인데,

산을 다니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매일은 못 해도 매주 꾸준하게 산을 다닌 결말은

체력 단련이 아닌 산에 동화된 사람.

청설모의 소리나 박새의 발소리를 듣게 되었고,

곤줄박이가 박새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박새와 진박새와 쇠박새를 구분하게 되었다.

하지만 빛나는 어떤 마음도 한계점이 있다.

계속 배우고 알아가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무엇을 잃었는지도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로

어떤 가치관의 삶에서 내가 가장 즐거웠는지도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계속 배운다.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배워야 하는 것도 배운다.

체력도 놓지 않고 키운다.

때때로 물리적인 힘으로 전력 질주하여

빼앗긴 것을 되찾아야 할 때도 있으니까.

꿈과 희망이 너덜너덜하여도 괜찮다.

어떤 형태로 있어도 좋으니,

사라지지만 않기를.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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